누가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 오겠는가

[암자기행①] 계룡산 심우정사

등록 2009.03.14 13:08수정 2009.03.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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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정사 가는 길.
심우정사 가는 길.안병기

우연히 읽은 괴짜 스님이야기

나는 지금 계룡산 자락 작은 암자인 삼우정사로 가는 길이다. 삼우정사는 삼불봉((775.5m) 아래 있다. 삼불봉은 세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솟아있는 형상이다.  마치 삼존불을 모셔놓은 듯하다고 하여 삼불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사실 작년 가을 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 작은 암자의 존재를 까맣게 알지 못했다. 우연히 한 스님이 쓴 스님이야기를 읽다가 비로소 계룡산 자락에 이런 암자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난 계룡산을 내 집 안방처럼 취급했다. 그만큼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계룡산에 대해선 거의 통달한 것으로 여기면서 지내왔던 텃수였다.

지금은 서울 목동 반야사에 주석하시고 계시는 원욱스님은 젊어서 동학사 강원 학인이었다. 그 시절 삼우정사에 있던 목초스님이란 괴짜스님을 만나게 된다. 목초스님이란 분은 쌀이 떨어지면 동학사 마루에 빈 쌀자루를 던져놓고선 훌쩍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돌아와선 채워진 쌀자루를 들고 올라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한 동안 소식이 없었다. 목초스님의 그런 행동을 두고 학인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땡초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암자에 쳐박히면 무문관처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장좌불와를 하는 도인인가.

호기심을 누를 길 없던 몇 몇 학인들은 마침내 직접 그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하고 삼우정사로 가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간다.

방문 앞에서 목초 스님을 부르자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햇살 때문에 눈살을 잔뜩 찌푸린 스님이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고 손을 휘휘 저었다. 가라는 뜻 같았다. 내가 혹시나 싶어 갖고온 라면 두 봉지를 꺼내 흔들자 스님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스치더니 들어오란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스님은 벽장에서 과자랑 사탕을 꺼내 먹으라고 우리 쪽으로 밀어놓고는 사탕을 오드득 오드득 깨물어 먹고 있었다. 라면을 먹다 벌떡 일어나더니 부처님을 홱 돌려놓고는 벽장 속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말없이 잡수셨다. 아니, 곳곳이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없건만 방안에 부처님을 돌려놓고 술 마신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우리 생각을 읽었다는 듯 "휴식중!" 이란다. 저 분이 마시는 술은 불법의 진리로 빚은 법주인가 한낱 곡차인가를 놓고 우리들은 오랫동안 옥신각신 했다. 법주냐, 곡차냐에 따라 그가 도인이냐 아니냐가 결정 나는 것처럼… - 원욱 스님의 '스님 이야기' 에서

마침내 벌겋게 취한 스님은 "여구두연! 여구두연!"이라고 소리쳤다. 여구두연 (如救頭燃)이라.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시급한 마음으로 하라고 참구하라는 뜻이다. 그 순간 원욱스님은 깨달았다. 내 머리에 불이 붙은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깨우침이 왔다.이미 목초스님이 도인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는 우연히 부딪힌 목초스님이 그에게 느닷없이 "수처작주!"라는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란 <임제록>의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에서 나온 말로 '어느 곳에 있든지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그때는 마침 원욱스님이 강원을 떠나 어디 선방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을 때였다. 목초스님의 말은 원욱스님의 그런 마음의 추이를 읽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와 여구두연(如求頭燃). 이 두 마디 말이 원욱스님의 마음에서 목초스님에게 들씌워 놓았던 땡초 혐의를 벗겨버렸다고나 할까.

이 추억담은 그리 길지 않다. 어떤 시주자가 백만 원을 보시했는데 그걸로 몽땅 묘목을 사셔서는 꼭 학인들 손으로 심으라고 당부하고 가신 후로 다시는 목초스님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건만

 심우정사 전경. 지난 가을에 찍어둔 사진이다.
심우정사 전경. 지난 가을에 찍어둔 사진이다. 안병기

 심우정사 앞에 줄지어선 나무 의자들.
심우정사 앞에 줄지어선 나무 의자들. 안병기

목초스님 이야기를 읽고나서 곧장 심우정사를 찾아 나섰다. 암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채였다. 길 아닌 곳을 헤맨 끝에 어찌어찌하여 겨우 심우정사에 닿았다. 심우정사는 삼불봉 암봉 바로 이래 좌정한 채 건너편 천황봉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각이라곤 살림집을 겸한 인법당 한 채와 하우스 같이 생긴 작은 집 한 채 뿐이었다.   

법당 툇마루 끝엔 작은 범종이 묵언 수행하는 수좌처럼 앉아 홀로 절집을 지키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평 반이나 될까말까한 작은 법당의 중앙에는 아담한 크기의 부처님 한 분이 모셔져 있었으며, 그 옆엔 "만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고 (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조주스님의 유명한 화두가 한글로 쓰여져 있다. 하나란 다름 아닌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불교는 세상 모든 일을 마음이 만든다고 생각하는 종교이다.

우측 벽엔 부산 해운정사 조실인 진제스님의 사진과 목초스님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다아아, 이 분이 바로 목초스님이시구나. 마치 그의 치열했던 정신세계를 반영하기라도 하는 듯 양쪽 눈썹이 약간 치켜 올라간 범눈썹인데다 눈빛이 몹시 흉흉하다. 그런데 목초스님 영정 옆에 진제스님의 사진이 걸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어쩌면 진제스님께서 스스로 경허-  혜월 - 운봉 - 향곡스님으로 내려오는 법맥을 이었음을 표방하기 때문일 것이며, 목초스님 역시 그 법맥에서 크게 벗어나신 분이 아니라는 걸 내세우고 싶은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더니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다짜고짜 부처님 전에 절을 하라고 권한다. 절하는 내 자세가 엉성했던지 직접 절하는 법을 가르치겠노라고 나선다. 몇 번을 따라하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그만두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가르침이란 예외없이 지겨운 법이다. 세상에 예외없는 법칙이란 없다지만 아마도 그 사실만은 예외가 없으리라.

밖으로 나오자, 이번엔 길 옆에 있는 나무 둥치들을 좀 날라달라고 한다. 몹시 낑낑거리면서 길가에 있던 그루터기 한 개를 절마당까지 날라다 주었다. 그만하면 말 대접은 한 셈이라 여겼다. 합장으로 작별 인사를 드린 다음 심우정사를 나섰다.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 어리석음이여

 눈 내리는 심우정사의 풍경.
눈 내리는 심우정사의 풍경.안병기

산길을 내려오면서 난 '겨울에 눈 내렸을 적에 다시 한 번 다녀가리라' 생각했다. 그것을
겨울이 다 지난 이제서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동학사를 지나서 은선폭포를 향해 올라간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삼우정사로 가는길이 나온다. 꽤나 가파른 길이다.  언제부터 내렸던 것일까. 봄눈치고는 꽤 많은 양이 쌓여 있다. 눈에 덮힌 산길은 종적이 묘연하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길의 깊이를 가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눈속에 푹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산등성이를 올라간다.

산 기슭 나무들은 저마다 제 가지에 눈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겨울나무가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인 셈이다. 눈은 나무에겐 삶의 무게지만 내겐 앞으로 나아감을 방해하는 심대한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스런 장애물이다. 겨울 눈길은 은연중 나처럼 어리석은 중생에게 장애물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한다. 눈의 거추장스러움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내리는 눈이여, 나의 발목을 더 깊이 빠지게 하라. 

마침내 심우정사에 도착했다. 심우정사란 선가에서 마음을 찾는 일, 진리를 구하는 일을 소를 찾는 일(尋牛)에다 비유한데서 비롯한 이름일 터. 절집 외벽에 에서 흔히 볼 있는 십우도는 바로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심우정사란 마음을 찾는 사람이 수행하는 암자라는 뜻이다.

심우정사는 40여 년 전쯤 세워졌으며 목초스님이 주석하신 것은 80년대초부터였다. 이곳에서 세속과 단절한 채 초연하게 살던 목초스님은 1997년경 입적하셨다고 전한다.

눈 내리는 심우정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휴정 사명대사의 제자인 소요 태능이 지은《소요집》에 들어 있는 게송 한 편이 떠오른다. 태능(1562~1649)은 13세에 백양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후에 묘향산의 휴정 서사대사의 문하에 들어 선을 깨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에 가담하여 싸우기도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지리산 연곡사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소요 태능스님은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고서도 마음을 찾아 고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경계한다.

可笑騎牛子(가소기우자) 가소롭구나. 소를 탄 자여
騏牛更覓牛(기우갱멱우) 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는구나.
 斫來無影樹(작래무영수)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銷盡海中漚 (소진해중구) 저 바다의 거품을 다 태워버리라

소를 타고서 소를 찾다니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소요 태능스님은 그 행위가 얼마나 우스운지 비유를 들어 말한다. 그림자 없는 나무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무다. 토끼의 뿔 · 거북의 털처럼. 그런 나무를 베어다가 그 나무로 불을 때서 바다의 물거품을 다 태워버리겠다는 일만큼이나 황당하하기 짝이 없도다. 아서라, 세상 사람들이여. 한사코 멀리 찾으려 하지 마라. 참된 마음이란 늘 가까이 있느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아름다운 게송이다. 

쌓인 눈의 깊이만큼 적막은 무게를 더해가고

 심우정사에서 바라본 계룡산 능선. 지난 가을에 찍어둔 사진이다.
심우정사에서 바라본 계룡산 능선. 지난 가을에 찍어둔 사진이다. 안병기

 눈 내리는 계룡산 황적봉 - 쌀개봉  능선.
눈 내리는 계룡산 황적봉 - 쌀개봉 능선.안병기

심우정사는 온몸으로 섞어치는 눈보라를 뒤집어쓰고 있다. 마치 암벽을 기어오르려고 갖은 안간힘을 쓰는 한 마리 딱정벌레 같다. 어찌 생각하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다시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다. 

잠시 목초스님을 생각한다. 불가에선 유별난 개성을 갖거나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는 탓에 대중과 함께 하기 어려운 스님을 가리켜 괴각이라 부른다. 괴각(乖角)이란 소의 뿔 두 개가 가지런히 나지 않고 방향이 서로 다르게 뻗은 것을 말한다. 일생괴각 처중무익(一生乖角 處衆無益). 일생 동안 자기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면 설령 대중과 함께 하더라도 이익이 없다는 말이다. 심우장의 주인이었던 만해스님께도 그런 평이 따라다닌다. 어찌 생각하면 목초스님 역시 그런 괴각(乖角)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겨내기만 하면 고독이란 자신을 성장시키는 불가해한 힘이다. 절대고독이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러나 이기지 못하면 고독이야말로 이 세상 어느 병보다 더 심각한 질병이다. 어쩌면 목초스님은 고독으로 덧난 상처가 아려올 때면 마치 옥도정기를 바르듯 곡차를 입에 댄 것이 아니었을까. 

폭음과 기행을 일삼기는 했을 망정 목초스님은 마음이 따뜻했던 분이라고 전해진다. 등산객들에게 두충차를 대접하기도 했고 자동온도 조절이 되는 보온물통을 툇마루에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또 길손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게 평상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목초스님의 뒤를 이어 이곳에 머물고 있는 비구니 스님도 나무 그루터기를 잘라서 마당가에 의자처럼 놓아두었다.  

맞은 편 황적봉 -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눈을 품은 구름이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다. 저번에 이곳에 와 바라볼 적엔 저 능선이 마치 지척처럼 가깝게 느껴졌었다. 능선이지닌 남성적인 근육이 자못 장관이다. 바라보는 사람에게 계룡산 경치 중 관음봉에서 삼불봉 쪽으로 펼쳐지는 자연성능이 주는 장쾌함에 못지 않은 장쾌한 맛을 준다. 예전에 저 능선에서 짖궂은 등산객들이 "땡초~" 라고 소리지르면 목초스님이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는 얘기가 전할 정도다.

때 늦은 봄눈이 계룡산 골짜기를 온통 은색으로 칠해가고 있다. 사각사각 눈이 쌓여가고 적막도 그만큼 제 깊이를 축적해간다. 그 깊은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목초스님의 '여구두연'이란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어리석은 것들, 시방 네 머리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거늘 그 불은 끄지 않은 채 도대체 뭘하고 있느냐.'
'스님, 저도 제 머리에 불이 붙었다는 건 잘 압니다. 그런 줄은 까맣게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느 결에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어이합니까. 삶이란 본디 눈 먼 짐승처럼 분별없는 것인 걸.'

시간이 흐를수록 침묵이 깊어진다. 산의 침묵도 깊어지고, 산의 침묵을 바라보는 심우정사의 침묵도 깊어지고, 그런 심우정사를 바라보는 내 침묵도 깊어져 어느새 하나의 산골짜기가 되어있다.

나를 둘러싼 주위의 침묵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진다. 이윽고  삼우정사를 나선다. 눈 쌓인 길은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훨씬 힘들다. 지난 산행에서 다친 다리가 통증을 모르스 부호로 변환시켜 내 머리로 타전한다. 관절이 아프니 제발 좀 쉬게 해달라. 철 없는 것들. 난 마음 속 주장자를 꺼내어 가만히 "할"을 외친다. 너 이놈! 네 우두머리인 머리에 불이 붙었다지 않느냐! 두 다리가 부리는 앙탈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산길을 내려서서 관음봉 가는 길로 접어든다.

덧붙이는 글 | 3월 4일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3월 4일에 다녀왔습니다.
#계룡산 #심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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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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