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내음새

큰 내음새에 동화되는 작은 내음새

등록 2009.03.12 11:19수정 2009.03.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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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에 강의를 하러 가는 날은 가기 전엔 한의원에서 지병자리에 쑥뜸을 한지라

내게서 솔내음 쑥내음이 물씬했다.

그러나 센터에 들어가니 삼십 여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먹을 갈고 있었고

그 각기 다른 먹향들은 일곱색깔 무지개처럼 그윽한 묵향을 피웠다.

 

십 분 ..이십 분...지나니 내게서 나던 한방 쑥내음은...

더 깊고 넓은 묵향내음에 묻혀 사라져버렸고 나 역시 강의에 열중하다보니,

언제 배가 살살 아팠느냐 싶다.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집중과 긴장이 보약일 때가

많다.

 

병과 싸우지 않고 수십 년을 함께 가는 사이좋은 동무가 된 셈이다.

아마도 치료를 게을리 하거나 약을 먹지 않거나 생활이 안일하게 늘어지면

그 소홀함에 지병은 토라져서 나를 공격할 지 모른다.

 

한시간 후 ...한창 강의 진행중인데 헐레벌떡...중년의 아줌마가 들어왔다.

젓갈냄새인지..미장원파마약냄새인지 물씬했다. 그러나 그 냄새도 수십 명이 피우는

묵향냄새에 잠겼다.

 

어디서 뭐하고 왔는지 삶의 현장표가 드러나는게 재미있었지만

그 아줌마의 냄새도 삼십 분쯤 지나니 묵향내음에 묻히고

사춘기 소녀처럼 하얀 화선지의 여백의 미에 온 정신을

빠뜨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진솔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람마다 독특한 냄새는 다 있다

그러나...좋은 분위기에 동화되고 화합되면서 근묵자흑이라고,

하나되는 냄새는 마음에 오래되는 향기로 남아있을 수 있다.

 

산에 갔다 온 사람들을 만나면 그 분들이 전신에 묻혀

느껴지는 산내음이 좋아서 본인들이 아무 자랑을 하지 않아도

절로 손을 잡고 차를 나누고 산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개성있는 작은 내음새와 소신있는 작은 목소리가 세상을 일깨우고, 각양각색의 무지개빛

삶들을 펼쳐서 가슴을 따스하고 감동을 일으키지만

정작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추진력은 작은 내음새와 목소리들이 합해진 힘에서 나온다.
 

그러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전혀 냄새가 안나는데..

아무런 감이 없는데도 거창한 일을 한 것처럼 요란을 떤다거나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면서도 다른사람과 세상을 위하는 일처럼

포장해서 언변을 토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조용히 뒤돌아 사람없는 빈 도랑의 풀꽃이나

한적한 시골공소에서 배시시 웃는 이끼 낀 돌담과

천년기도도량의 말없는 동자승을 보러가고 싶어진다.

2009.03.12 11:19ⓒ 2009 OhmyNews
#인간내음새 #근묵자흑 #묵향내음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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