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여행자는 모두가 가능한 게 아니라 이미 종자가 따로 있다는 걸 일러준 작은 애. 여행을 너무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김은주
큰 애는 온실 형 작은 애는 잡초 형식당에서 절망했다면 터미널에서는 불행했습니다. 차에 오르기까지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추위와 배고픔을 느끼며 앉아있는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큰 애의 표정은 날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괴롭지만 아무 말도 않고 참아내고 있는 게 역력한 그 표정을 보면서 애잔함과 미안함, 후회 이런 감정이 마구 올라왔습니다. 무모하고 대책 없는 엄마 만나서 애들이 생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애들이 이 어려움을 참아내고 돌아가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금 쌓은 인내력으로 슬기롭게 잘 극복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를 했습니다.
아마도 애들에게는 지금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 중 가장 고생스러운 경험일 텐데 꽤 난이도가 있는 고난이었습니다.
작은 애야 워낙 낙천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까 오히려 이런 다이나믹한 상황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난세에 영웅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작은 애는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결코 지치거나 재미없는 표정을 안 보였습니다. 사실은 너무 재미있어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때 13시간의 등반 동안 한 번도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 작은 애는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입니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소유한 꽤 운 좋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보니까 몇 끼 굶는 것, 하루 종일 걷는 것, 추운 데서 자는 것, 이런 건 우리 작은 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애를 괴롭히는 것은 무료한 시간입니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 방학 때 아무 일 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그런 시간을 두려워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그 시간에서 탈출해 다이나믹의 극치인 지금은 하늘로 튀어오를 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 일행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이번 여행을 가장 즐긴 사람이 우리 작은 애라는 것입니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생활 여행자의 싹수가 보인다는 말도 덧붙일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큰 애는 하우스 속에 자란 화초다 보니까 비바람과 강한 햇빛이 쏟아지는 들판에 내놓은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했습니다. 큰 애에게는 쳇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오히려 안전한 울타리였습니다. 거기서 평안을 느꼈던 애입니다. 그러니 큰 애가 지금 처한 우리 현실에 불만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큰 애는 지금의 다이나믹한 현실에 불만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습니다. 큰 애의 불만은 시한폭탄처럼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매끼 따뜻한 밥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잠들다가 갑자기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난로 하나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는 현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사서 한 고생이지만 사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나도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내가 이러할진대 우리 큰 애가 겪는 고통은 꽤 심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터질 그 시한폭탄을 난 감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