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완장의 힘

등록 2009.03.11 11:09수정 2009.03.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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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시내도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예산을 다 써버리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멀쩡한 도로에도 콜타르를 덧입히고 덧입혀서 높아지고, 도로의 폭은 경계표시판이나 도색선으로 더 좁아지며, 주차공간 또한 어디를 가나 유료주차장 아니면 주차할 곳이 별로 없다.


전용주차장이 있는 기관들도 비슷하다. 주차는 25대 정도만 가능하지만 6여명 직원들이 거의가 차를 갖고 출퇴근하고, 복지서비스 관련 업무차량이 5대 정도가 되어서 대부분 직원들은 한참 떨어진 주택가 골목이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들어온다.

그러나 부득불 출근시간이 늦었거나, 급한 출장과 외근 업무 같은 경우는 요령껏 차를 주차장 안에 세웠다가 다시 볼 일을 보러 가기도 한다. 수년 간 지켜보고 경험해보니 협소한 주차공간이지만 차량들이 알아서 요령껏 사이좋게 어울리는 듯했다.

그러나 주차통제가 시작된 뒤부터 심심찮게 시비가 생긴다. 차량들끼리의 주차 시비가 아닌, 주차단속을 하는 어르신이 생긴 뒤부터다. 어르신 일자리 사업창출의 하나로 주차안내원을 신설하고, 완장같은 노란 어깨띠를 두르고 매일 주차안내를 어르신이 하신다. 주차를 안내하고 오고 가는 차량들의 흐름을 원활히 하라고 만든 주차안내인데... 말이 안내이지 주차지도와 감시에 가깝다.

주차연수를 전혀 받지 못해 완벽한 주차를 못하는 나로서는 왼쪽과 오른쪽 50센티를 고르게 남겨놓고 정중앙으로 차를 균형 있게 주차하는 것이 참 힘들다. 지하주차장은 너무 좁아서 들어갈 때는 괜찮은데, 나오려면 기둥 사이의 각도를 조절 못해 범퍼가 자주 긁혀 아예 포기했다.

뒷산 앞의 공터를 찾아 차를 세웠지만, 항상 차가 안녕한 것은 아니었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차 뒷창이 깨져 오디오를 뽑을려고 한 흔적도 있어 너무 놀랐고, 그 뒤부터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한적한 공기가 신경이 쓰여 그 곳은 가급적 가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주택가 골목터에 차를 주차시켰는데, 누군가 차에다 못 같은 것으로 회오리 모양의 상처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휘갈긴 글씨로 다음에도 이 자리에 주차를 하면 알아서 하라는 메모가 창문에 있었다.

서울에는 주택가 골목의 주차공간이나 아파트주차장에 집 번지나 호, 차량 넘버 같은 것이 적혀 있지만 소도시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자기 집 앞의 골목에 차가 있으면 답답하거나, 정작 자기 차량이 필요할 때 상시 주차 못하면 불편한 모양이다.


그래서 공용도로를 자기 땅인 것처럼 자기담장 앞 도로에 말뚝을 박아 타이어를 몇 개 놓아두거나, 물통, 볼상사나운 시든 큰 화분, 드럼통 갖가지 물건을 두기도 한다. 그래서 주차문제 때문에 종종 큰 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차를 제대로 주차할 공간을 찾느라 동네를 빙빙 돌다가 지각은 면해야 하겠기에 일단 기관 주차장에 급한 대로 차를 세웠다. 아침 회의 끝나면 지역도서관으로 외근을 가야 하니 좀 비뚤해도 다른 차량에 큰 지장이 없을테니...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 엄한 주차안내 어르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역도서관으로 외근 가는 일이 내부 결제가 늦어 좀 늦어졌다. 차량을 금방 빼려든 일은
이어지는 교육상담객들로 인해 생각 밖으로 잠시 숨어버렸다. 교재를 편집제본하러 가려고 차를 타니 기다렸다는 듯이 어르신이 달려온다. 화가 많이 나신 표정이다.

오전에 방송도 했다고 하시는데, 차가 별로 비뚤게 주차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화를 내시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알고 보니 경차전용자리란다. 내 차도 경차의 한 종류로 보려면 볼 수 있는데, 그 분이 아는 경차는 마티즈 종류만 해당하는 것 같다.

차를 치우라고 오전 내내 방송을 했는데 나오지 않다가, 오후에 어슬렁 나오는 나를 보니 무시받은 느낌이신 듯 화가 더욱 나신 것 같다. 방송을 못 듣는다고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신하면서 다독거려드렸다. 어쨌든 어르신은 어르신이기 때문에... 차를 멀리 단골식당에 주차해놓고 들어오면서 보니 이 차 저 차를 향해 손짓을 하는 어르신의 어깨와 손짓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우리는 보건소와 같은 주차 공간을 쓰는데 보건소 내방객들도 전과 다름 없이 들어왔다가 다시 되쫓겨 나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좋게 보면 직분에 충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해소할 수 없는 주차 부족의 현실 앞에서 주차안내원이라는 완장의 힘으로 원칙만을 고수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어르신에게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주차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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