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복날의 손수레 11
"응, 잘 있었어?"
"예. 근데요, 선호씨…."
"어? 왜?"
"저, 인천 왔어요."
"엉?"
"여기 동암역이에요. 선호씨 사시는 데가 모래내시장 맞죠?"
"응. 모래내시장 뒷산."
"여기서 몇 번 타고 가야 돼요? 마을버스가 너무 많아서 못 찾겠어요."
"하하, 남동구가 좀 넓어? 그런데 잘 빠져나온 거니?"
"어딜 빠져나와요?"
"남광장으로 빠져나왔냐구. 뒷광장으로 가면 부평 쪽 마을버스가 많을 거다 아마."
"잠깐만요. (아줌마, 여기 남광장 맞아요? 예, 맞아요. 감사합니다) 맞대요, 남광장."
"그런데 그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좀 그렇다."
"뭐가요?"
"우리나라 말로 하면 '고맙습니다'가 맞거든. '감사합니다'는 일본식이야."
"어머! 그래요?"
"그런데 어쩐대?"
"예?"
"내가 지금 서울 와 있거든."
"예?"
정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느낌을 받으며 선호는 능청을 떨었다.
"그러게 연락도 없이 오면 어떡하니?"
"야유, 어떡해?. 전화하고 올 걸. 여긴 아는 친구도 없는데."
"쯧쯧."
"인천의 미아 됐잖아요."
"하하하! 걱정 마세요, 내가 도와줄게."
"예?"
"서울 안 갔어. 방금 모래내시장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 사갖고 올라왔다."
"아유, 홀아비 냄새!"
금세 정인의 안색이 밝아지는 기색을 느끼며 선호는 말했다.
"야야, 나는 아냐. 홀아비는 상처(喪妻)하고 혼자 사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꼭 그 냄새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죠 뭐. 은유법."
"나를 이해시키려니까 직유법으로 바뀌어 버렸네, 하하."
"아유, 말의 유희(遊戱)."
"음, 아무튼 좋아. 이렇게 왔으니까 내가 우리 마을 모래내시장 구경 좀 시켜줄게. 대한민국 백성은 재래시장에 관심 가져야 해."
"몇 번 타고 가요?"
"2번 보이지?"
"예."
그때는 532번이 아니라 2번이었다.
"그거 타고 와서 모래내시장 앞에서 내리면 돼. 내가 정류장 앞에 내려가 있을게."
2번 마을버스 모래내시장 입구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자, 두 대째 멎어 선 마을버스에서 정인이 내렸다. 정인과 악수를 하며 선호는 "청순해졌네"하고 덕담을 건넸다. O형 혈액형답게 톡톡 튀는 발랄한 스타일이었는데, 웬일인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색(思索)의 결과죠."
귀엽게 웃는 정인의 한 손에는 손가방이, 다른 한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무슨 책이야?"
"소설이에요. <아리랑>."
"어디 보자, 어? 조정래 선생님 거네?"
"예, 후후후."
"나처럼 형편없는 작가만 아는 줄 알았다니 그게 아니네. 위대한 작가선생님도 알고 말이야. <태백산맥>은 읽었어?"
"아뇨. 요즘에 우리 근대사와 현대사에 관심이 갔는데, 역사 순서대로라면 <아리랑>이 먼저잖아요."
"그렇지. 그 책엔 우리 민족의 뼈아픈 수난사가 빼곡하게 담겨 있지."
"그래서 이걸 먼저 읽기로 했어요."
"하하, 그것도 한 방법이지."
"아유, 또 말의 유희."
"그래? 어쩌다가 그렇게 말이 나온 거라구. 나는 평소에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데 말야."
정인은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
"저기가 모래내시장이에요?"
"응. 왼쪽은 구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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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 속으로 여느 재래시장과 다르게 중앙도로가 넓고 쾌적했다. ⓒ 김선영
▲ 재래시장 속으로 여느 재래시장과 다르게 중앙도로가 넓고 쾌적했다.
ⓒ 김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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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와 정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어갔고, 길을 건너 모래내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시장 풍경이 저 멀리까지 펼쳐졌다.
"어때? 재래시장 느낌이?"
"시장 거리가 깨끗하네요."
"중앙도로가 넓은 게 장점이지. 자가용 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탈이지만."
"뭐 사서 편하게 가져가려니까 그런 거 아녜요?"
"백화점 셔틀버스를 없앤 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잘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 바람에 자가용이 더 늘지 않았나 몰라. 재미있는 건, 자가용 타고 가서 쇼핑을 마치고 온 다음에 말이야, 따로 시간 내서 살빼기 운동을 한단 말씀이야.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타든, 운동장에 가서 뛰거나 빨리걷기를 하든. 짐이 아주 많다면 모르겠는데, 장 보러 걸어갔다가 걸어오면 운동이 저절로 되지 않을까?"
"그래도 사람 생각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무거운 짐 들고 오기도 힘들 테구요."
"내가 대학생 때 얘기 하나 해줄까? 학교 앞 식당에서 셋이 밥 먹을 때 김치찌개 2인분 시켜 놓고 공기밥 하나 추가해서 먹곤 했거든. 그런데 김치찌개 하나에다 공기밥 하나 추가로 시켜서 둘이 먹으려고 하면 안 판다고 한단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장삿속이 없는 거지."
"왜 그렇죠?"
[계속]
덧붙이는 글 | 2004년 말에 초고를 써놓고 PC 안에 묻어두었던 소설입니다만, 그 시절의 세상 이야기와 최근의 달라진 세상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보충하고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선호의 눈을 통해,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질 것입니다. 이 소설은 실화 자체가 아니라, 여러 실화를 모델로 한 서사성 있는 창작입니다.
2009.03.08 12:5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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