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첫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정확히 1년 만이다. 언론매체에 칼럼을 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 필자는 작년 2월 말에 앞으로 1년 동안 절필할 것임을 평소 관계를 유지하던 몇몇 언론사 데스크에 알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년 초에 금융계에 종사하던 제자가 보냈던 신년하례 이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평소 필자의 글을 자주 읽었다는 그 제자는 그 이메일에서 "선생님 글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 같아요"라고 촌평을 해 주었다. 그랬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집권과정을 보면서 필자가 썼던 글의 논조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변해 갔던 것 같다.
그 때 느끼는 바가 있어 1년 절필을 결심했다. 내심으로는 이 동안에 인격 수양도 좀 해서 다음에 독자 앞에 설 때는 조금 더 점잖은 논조로 차분하게 생각을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경제 살리겠다는 데 왜 난리냐고?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1년 동안 절필하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절필 후에 "인격수양"된 모습으로 "점잖게" 생각을 전하겠노라는 내심의 약속은 거의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당장 1년의 공백을 깨고 처음 쓰는 이 칼럼의 내용부터 그리 점잖지 못하니 말이다.
사회과학자가 쓰는 칼럼은 사회의 반영이다. 따라서 글의 내용이 점잖지 못한 진짜 이유는 사회 자체가 점잖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부터 어제까지의 국회 모습이 그러했다. 논리와 상식은 실종되었고 신의는 배신으로 되돌아왔으며 절차적 정당성은 속도전과 강행처리라는 구호 속에 속수무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속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는 결국 대안없이 폐지되었고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과 같은 금산분리 완화법안은 이제 법사위 통과와 본회의 표결이라는 단 한 자락의 고비만을 남겨 놓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은 어쩌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 경제살리기를 하자는 데 왜 그 난리들이냐? 금산분리 한다고 밥 먹여 주나? 모로 가도 경제만 살아나면 돼."
경제가 어려우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참으로 위험할 뿐 아니라 그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 모두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1년 반 전 대선 때 이런 생각을 한 바 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선택했다. 그 결과 경제가 살아났는가? 나라 꼴이 모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정작 경제는 안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필자만의 편견인가?
외환위기 직후 출총제 폐지의 교훈은?이번에 경제살리기 법안으로 포장된 공정거래법 및 은행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 경제를 모로 가게 하는 데에는 공헌할지 몰라도 경제를 살리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법들이다. 아마 조금 시일이 지나면 우리 국민 모두는 "우리 경제가 모로 가는 것"의 결과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출총제 폐지부터 살펴보자. 아무런 대안없이 출총제를 폐지했을 때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목도한 바 있다. 외환위기 직후 규제 완화한답시고 출총제를 폐지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투자가 이것 때문에 늘어난 것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 대신 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만 엄청나게 늘어났다. 경제는 모로 갔지만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출총제를 다시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가? 10년도 안 된 과거는 역사가 아니고 그냥 에피소드일 뿐이어서 그런가? 앞으로 우리는 그 망각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지금부터라도 순환출자 규제나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 보완조치의 입법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는 망국의 지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