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보는 !쿵사람.
삼인/마저리 쇼스탁
.. !쿵 여성들은 되도록이면 혼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최대한 덜 받고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는데 그 덕분에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쿵 문화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로 여겨지지만, 초산일 경우에는 다른 여성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어린 산모들은 되도록이면 친정어머니나 가까운 여자 친척들이 같이 있어 주길 바라지만, 시집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시집 쪽 여자 친척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어 준다 해도 진통과 분만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신이 변덕스럽게 개입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산모 자신이다. 순산을 하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때 산모는 조용히 앉아서,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쳐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분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한다 … !쿵 여성들은 가임기에 평균 4∼5회 출산을 경험한다. 출산을 거듭할수록 혼자서 이상적인 분만을 치러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 아기에게 대신 젖을 먹여 줄 수 있는 다른 여성이 없을 경우에는 아기를 2∼3일씩 굶기기도 한다 … 명확히 정해진 '산후 조리'기간은 없지만, 일상생활을 재개할 만큼 튼튼해졌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는 일상적인 활동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채집 생활을 하느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다져진 훌륭한 신체 조건 덕분에 대부분은 금세 회복한다 … "아기를 낳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서로 관계를 안 해. 남자들은 산모가 회복할 때 흘리는 피를 두려워하거든. 아기가 좀 자랄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애 낳고 한 달 정도만 기다렸다가 다시 남편과 한 이불에 들지" … "아기, 그래…….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날이 다가오면 맘이 정말 무거워. 하지만 일단 낳아서 모래 위에 눕혀 놓고 보면 아기는 정말 멋진 선물이지.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맘이 행복해져. 그래 그 조그만 아기한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지. 하지만 아기를 낳을 때의 그 화와 고통이란……. 그런 건 왜 있는지 모르겠어!" … "아기는 그저 누워 있었고 그렇게 사흘이나 굶긴 다음에야 한쪽 가슴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날 밤에 다른 쪽 가슴에서도 젖이 나오고. 가슴이 좋은 젖으로 가득 찰 때까지 나쁜 젖을 짜서 버렸어. 아기는 정말 끝도 없이 젖을 빨고 또 빨다가 겨우 배가 차니까 잠이 들었지." .. (253∼273쪽)책 하나를 읽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니 너도 즐겁게 읽어야 해' 하면서 건넬 수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여도 '엄마 아빠가 아주 맛나게 먹은 밥이니 너무 맛나게 먹어야 해' 하면서 들이밀 수 없습니다. 옷 한 벌을 입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신나게 입은 옷이니 너도 신나게 입어야 해' 하면서 내밀 수 없습니다.
아이 엄마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고, 아이 아빠는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나라에서 보면, 엄마는 중졸이고 아빠는 고졸입니다. 요즘 세상에 대학 안 나온 엄마 아빠가 어디 있을까 모를 노릇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대학을 안 가고 대학을 안 마친' 일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 훨씬 너른 사람을 만나면서 훨씬 깊은 삶을 들여다보았고 훨씬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느꼈습니다. 학점에 매여 읽거나 익히는 책이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라거나 쓸모있거나 아름다워지고나 읽거나 익히는 책이요 학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 기대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하면서 어떻게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맞이해야 하는가를 따지고 익혔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돈에 기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 어른한테서 익힙니다. 앞서 나온 훌륭한 책에서 배웁니다. 앞서 '돈에 안 기대고 아이를 돌보던' 사람들한테서 슬기를 받아먹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서도,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제 삶을 고이 엮으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고, 이와 같이 나아가도록 늘 힘쓰려 합니다.
.. 가축떼는 영구적인 샘물을 중심으로 점점 더 넓은 범위를 뜯어먹으면서, 아직까지 !쿵족이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츠와나와 헤레로 마을들이 전통적인 !쿵족의 샘물 주변을 에워싸고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쿵식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유한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일은 이제 용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한때 직접 고기와 식량을 구해다 가족을 부양했고, 품위를 지키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던 !쿵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지위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한 환경 변화가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많은 !쿵 사람들이 마을 농가에서 빚어다 파는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우기에 이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쿵족의 연장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그들은 전통 문화의 산증인으로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다니고 소젖을 짜고 염소와 당나귀를 돌보고,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우물을 파는 법을 배운 손자들에게 그들이 지닌 지식과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아버지가 '베사, 난 자네가 맘에 안 들어. 내 딸을 데려가겠네. 이 애한테는 황야에서 살고 황야를 아는 남자를 찾아다 붙여 줄 거야. 나는 이 애가 마을 남자랑 결혼하길 바라지 않네.' 하셨고,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결국 식구들은 나를 데리고 떠나고 베사는 거기 남았지." .. (300∼312쪽)요즈음 '청소년 사진'을 찍으면서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부대끼는 푸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열 몇 해가 있어야 푸름이가 될 테지만, 열 몇 해라는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아 금세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주하는 푸름이들이 낯선 남남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한편, 스무 해 앞서 제가 푸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청소년 문화가 한국에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없는 청소년 문화를 사진으로 담으면 어찌 될까' 하고 생각을 잇다 보면, 우리 어른 스스로 '어른 문화가 한국에 있도록 하지 않는 동안'에는 청소년이든 어린이이든 아무런 문화가 없이 그 애틋한 나날을 허투루 스쳐 보내게 될밖에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다시 어른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치는 삶자락을 보면, 그리고 아이가 다시 어른한테 가르칠 삶자락을 살피면, 거의 다람쥐 쳇바퀴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를 말하는 사람이든, 지식을 외치는 사람이든, 보수를 지키려는 사람이든, 나라와 겨레를 외는 사람이든, 자기부터 스스로 진보나 지식이나 보수나 나라나 겨레가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지거든요. 입으로 외는 무슨 주의자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어떤 빛줄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붓끝으로 끄적이는 무슨 주의가 아니라, 몸뚱이로 부대끼어 저절로 터져나오는 슬기나눔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곰곰이 따지면, 진보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하며 보수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평등을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하며 평화를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종교를 외쳐도 돈하고 헤어져야 하며 학문을 외쳐도 돈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권력을 붙잡아도 사랑이어야 하며 권력하고 동떨어져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니,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게 하는 자동차는 진보와 어긋납니다. 지금 세상을 아름다이 지키고 싶으니, 지금 세상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도록 망가뜨리는 자동차는 보수와 어긋납니다. 모두가 고른 권리를 누리는 삶을 바라니, 가난한 낮은자리 사람들 삶터와 여린 목숨붙이 보금자리를 밀어내는 아파트는 평등과 어긋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까닭은 더 많은 자원을 더 값싸게 끌어들여 더 많이 넘치게 쓰면서 홀로 배부르려는 속셈에서 비롯하니, 엄청난 자원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도록 하는 아파트 짓기와 허물기와 새로짓기는 평화와 어긋납니다. 부처님처럼 살든 하느님과 한몸이 되든 내 것이 아닌 나 아닌 것이 되면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해야 하니, 내 주머니에 쌓이는 돈과 종교는 어긋납니다. 나 하나 똑똑해지고자 파고드는 학문이 아니라 나와 내 둘레 삶터 모두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슬기로움을 갈고닦는 학문이니, 학문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게 되는 일은 서로 어긋납니다.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며 나라를 튼튼히 돌보겠다는 권력자는, 오로지 사랑일 때에만 겉과 속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세상 얕은 흐름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즐겁고 조촐하게 살려는 사람한테는, 미움이나 등돌림이 아닌 사랑을 가슴에 붙안아야 나부터 즐겁고 조촐한 삶으로 꾸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