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길곡면
극단 백수광부
독일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Franz Xaver Kroetz)의 작품인 '오버외스터라이히'(oberὅsterreich)를 원작으로 하는 극단 백수광부의 <경남 창녕군 길곡면>.
극에는 눈길만 돌리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 속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적당 적당하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삶. 같은 회사의 판매직인 아내와 배달직인 남편이 맞벌이를 하며 빠듯하게 적금을 붓고 보험료를 내고 쉴 새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기분이다 싶은 날엔 비싼 가구를 카드 할부로 긋기도 하고 기념일엔 아스파라거스로 위장된 데친 파와 함께 스테이크를 내놓기도 하고 또 가끔은 외식도 한다.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에서 적당히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는 아내나 화투로 잃은 6만원이 아까워 짜증을 내는 남편이나 요즘처럼 지극히 판타지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혹은 절대 찾아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혹은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은 참 징그럽게도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런 그들에게(엄밀히 말해 남편에게) '아이'의 등장(?)은 충격과 공포이자 일종의 '고생길'의 시작이다. 실제로 몸 속에 아이를 품은, 새 생명과 함께 호흡하며 느끼는 어머니라는 존재와는 달리 아버지라는 존재들은 생명의 싹과 탄생에 대해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온갖 미사어구로 포장해도 내 몸은 내 몸, 남의 몸은 남의 몸. 아버지가 된 이들은 아이가 탄생하여 방긋 웃기만 해도 하루의 고됨이 '싹-' 사라진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해본 이들의 말이고. 경험 없는 남편이라는 사람들이 갖는 아이에 대한 공포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삶을 짓누를 노동의 부담으로 먼저 다가온다.
'아이가 생겼다'며 환희에 차 있는 아내의 말에 '우와! 신기하다, 나도 아빠다'가 먼저 떠오르느냐, '기저귀 값, 분유 값'이 먼저 떠오르느냐는 순서의 차이일 뿐이라는 말이다.
극중의 남편 또한 그랬다. 아이가 생겼다는 아내의 수줍은 고백에 당황하며 억지로 기뻐하는 척은 했지만 그는 이내 온갖 장황한 설명을 에둘러가며 아내 스스로 아이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거나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애써 정당화하려 한다. '남들 다 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은 결코 특별한 게 아니다, 배달 일을 하며 굽실대는 아빠는 아빠로서 자격이 없다, 하다못해 난 대학도 안 나왔다…'.
생명 탄생의 기쁨보다 생활의 균열이 앞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