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자를 진정 힘들게 하는 것

청년실업자의 독백

등록 2009.02.28 18:03수정 2009.02.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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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세계노동기구)가 발표한 세계 청년실업인구가 88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나 역시 그 8800만이라는 숫자에 정확히 '1' 만큼 기여를 하고 있는 처지이다. 당장 구직을 하는 입장에서 피부로 와닿는 어려움을 느끼다 보면 문득 왜 이렇게 몇 년만에 모든 것이 변한 것일까, 라고 자문해보게 된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을 1년 정도 앞둔 때만 해도 많은 선배들은 '남들 다 그렇듯'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취업을 했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버렸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 사실 세계 청년 실업인구 8800만 같은 것은 어찌 보면 그저 숫자놀음일 수도 있다. 8800만이라는 숫자의 사람이란 것은 잘 상상도 안되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엄청난 위기' 라는 느낌도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8800만이란 숫자는 사람을 만명씩 8800줄로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렵게 상상할 필요없이 이력서를 수십 군데쯤 넣어보면 그제야 8800만이라는 숫자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렇게 이력서를 넣고 퇴짜를 맞아보면 8800만이라는 숫자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안도감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실업자' 신분임을 깨닫게 된다.

 

서울의 유명 대학을 나오고 토익을 보고 어떻게 보면 '별 의미도 없는' 자격증을 이력서에 하나 추가하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허탈한 자문 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거나 전철역에 뛰어드는 식의 비극적인 기사를 보게 되면 나 역시 종국에는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이것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젊은이들은 힘이 빠지고 한숨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업자'의 힘을 더욱 빠지게 하는 것은 이런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서 임금을 착취하거나, 대졸 초임 임금을 삭감하여 일자리 나누기를 하겠다는 '사탕발림'이다. 현실을 보면 나라는 가진 자를 위한 감세에 열을 올리고 있고, 말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여전히 임원들이나 소위 '윗분'들은 주머니가 넉넉하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올해 배당금으로 615억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배당금은 주주라면 당연한 권리이고 사실 배당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양 극단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다고 하고 임금을 줄여서라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그네들의 말과 615억의 배당금은 어딘가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불경기로 인해 배당금이 전년대비 33.3%나 감소했다는 걸 굳이 광고하듯이 알려대는 것이다. 나는 615억의 가치나 의미를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네 입장에서는 일단 1억이 넘어가는 금액은 그냥 '엄청난'이라는 수식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며, 나같은 실업자는 사실 한달에 4,50만원이라도 어떻게든 벌면 감지덕지 하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이렇게 돈이 생기면 그래도 구직자 중에서는 나은 편이다. 

 

더욱 허탈한 것은 임금을 깎든 말든 조건이 어떻든 말든 일단 취업만 하게 해준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청년실업자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의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결국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기업뿐이라고 하면 너무 내 시각이 비뚤어진 것일까? 경제난이라는 이유만  갖다붙이면 무슨 짓을 해도 이제 용서가 될 법한 모양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리해고든, 신입사원 연봉을 깎던 구직자 입장에서는 그저 감지덕지 한것처럼 만들어 놓고 있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줄이고 비정규직 기간은 늘인다. 그것이 지금 정부와 기업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단지 경제난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그 고통은 모조리 이 사회를 지탱하는 바닥에 있는 우리네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것도 감지덕지하게 받아들이라면서. 일자리 나누기라면서. 그런 모든 규정을 지지하고 적극 옹호하는 국회의원들의 연봉이 무려 1억1천만원이 넘고 의정활동 지원비가 8천만원을 상회한다는(2008년기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모두가 힘든 때일수록 기득권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구휼미라도 있었다. 지금 약한 자들을 포용한다 해도 힘든 마당에 기득권은 양보를 하기 보다 이 기회를 틈타서 오히려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으려고 하는 눈치다. 대졸 초임 임금을 삭감하고, 비정규직 근무기간을 연장하고, 최저임금제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지덕지하며 그거라도 좋으니 일단 일이라도 시켜주십사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것이야 말로 비극이다. 청년실업자를 절망하게 하는 정말 큰 이유는 단지 번번이 퇴짜를 맞는 자의 상실감뿐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구직자는 물론이거니와, 고용자와 위정자의 총제적인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실 청년실업자가 할 수 있는 고통 분담이라는 것은 참으로 얼마 없다. 하지만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하는 '그들'은 처지가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의식의 변화야 말로 당장 일자리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전철 선로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며 투신을 고민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2009.02.28 18:03ⓒ 2009 OhmyNews
#사회, 경제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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