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남소연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대졸 초임(연봉 2600만원 이상인 자에 한해)을 삭감해 채용 인원을 더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몇몇 대기업들은 임원의 임금을 깎아 그 돈으로 '인턴'을 채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명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요. 단어만 봤을 땐 뭔가 훈훈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삭감'인 것이고 이로 인해 '임원'들보단 평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이 더 클 것이란 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한 달 전 우리 회사에서도 정리해고가 진행됐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잘리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여직원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는 30대 남자 직원까지 전체 10%에 달하는 숫자가 '해고'라는 문턱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회사는 단호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직원들에게 지급되던 수당의 30%가 깎였고 설상가상으로 상여금도 200% 삭감됐습니다.
정리 해고된 옆자리 동료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부장님 호출에 힘없이 발길을 옮기던,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발걸음을 연상시키던 그의 모습이…. 정리해고 다음 날 짐을 싸 사무실을 떠나던 동료들의 모습도 아직 머릿속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바탕 바람이 일었지만, 남은 직원들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나도 해고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정리해고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침울과 냉소감원과 임금 삭감의 파고는 그렇게 회사를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떠나간 동료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회사 입장에선 인원이 줄어 고정비용을 아끼고 숨통이 트였다고 자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남은 자들이 겪을 심리적 충격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회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침울함을 넘어 모두 냉소적으로 변했습니다. 웃음도 잃었습니다. 자본의 무자비한 효율 논리는 삶을 공유하고 관계를 매개로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터를 가꿔가려는 동료들을 더욱 더 피 나는 생존 경쟁과 피동적인 자본의 객체로 내몬 것입니다.
둘째로 업무가 2배로 늘었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할 일을 부서에 따라선 한 사람이 떠맡아야 하기도 합니다. 회사 입장에선 3명분의 일을 한 사람에게 시키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자리보전을 위해 싫은 내색 없이 생경한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남은 자들에게서 노동의 창의성과 업무 효율성을 기대하기란 힘듭니다.
엎친 데 덮쳤다고 해야 할까요. 급기야 회사는 당분간 휴업에 들어갑니다. 물론 저도 출근 하지 않습니다. 주문 물량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생산직 동료들의 고충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미 지난해 말 30% 인원 감축이 있었습니다. 또 이번에 휴업에 들어가게 된다면 100만원도 안 되는 기본급으로 자식 교육과 살림까지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습니다. 모 공기업에서 퇴임 후 감사로 있던 분이 얼마 전 우리 회사 부사장으로 부임한 것입니다. 사실 그 분 1년치 연봉이면 직원 5명이 나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생산직 직원의 경우, 더 많이 채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선 그 분이 받는 만큼 기여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동료 직원들의 해고를 목격한 저로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대기업 임원 임금 삭감은 생색내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