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 돕기 인사동 거리캠페인에 나온 두 딸
권영숙
요즘은 부모가 자식이 조금이라도 실패의 경험을 할까봐 자신들이 대신 결정해 줍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인생을 가장 빨리 망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직접 선택해서 결정한 것이 잘 안 됐다면 그것을 실패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식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매순간 선택하는 삶이 끊임없이 주어질 텐데 그때마다 부모가 '짠'하고 나타나 대신 해주겠습니까. 또 설령 그렇게 해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과연 자식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천년만년 부모가 같이 살아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바다를 비추는 등대일 뿐입니다. 삶이란 배를 항해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딸. 엄마랑 이번에 인사동 거리 캠페인 가자.""헐? 그게 뭔데?""정토회에서 매달 셋째 주 일요일마다 인사동에서 북한동포 돕기 거리모금이 있거든. 엄마랑 거리모금 가자.""엄마. 나 매달 용돈에서 북한동포 돕잖아. 꼭 그런 거까지 나가서 해야 돼? 쪽팔리게.""쪽팔리긴.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어머니. 혼자 많이 즐거우세요~."간디학교 고등과정에는 6학년(고3) 1학기에 자신의 진로를 찾는 인턴십 과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인턴십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 한 학생이 동티모르에 봉사를 갔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아이가 언어를 극복했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니 몸짓, 발짓부터 시작해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싹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데 나는 무조건 일단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얘 벌써 유치원 다녀요?""응. 영어 유치원 보냈어.""몇 살인데요? 너무 빠르지 않아요?""세 살. 빠르긴 뭘 빨라. 언어는 지금부터 안 하면 안 돼. 그냥 듣는 연습이라도 해야지."서초구인 저희 동네 상당수의 부모들은 5살이 되기도 전에 아이를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방학 때는 아이를 데리고 외국 나가고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저희 동네에서 물 위에 뜬 기름과 같습니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학원 앞에서 데려오고 데려다주고, 주말에는 또 따로 하는 과외가 있고, 아이는 자기 의견이 없습니다.
부모가 짜 준 스케줄에 몸을 움직이는 인형과 같습니다. 부모가 느긋하게 자식을 기다려 주면 자식은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래서 법륜스님 말씀대로 부모는 자식의 인생에 간섭할 생각 말고, 자기 인생만 열심히 살면 됩니다.
마음껏 꿈꾸어라, 그리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되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이 행복하여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교육. 날마다 변화하며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대안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년 학부모연수 때 간디학교 양희창 교장선생님 말씀 중)학벌사회에서 학부모로 살아간다는 것대안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느냐는 큰딸의 질문에 이제 답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북한 동포가 하루에 수천명씩 굶어 죽어도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가 아니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 굶어죽어도 된다'라고 말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그럼 이제부터는 전혀 두렵지 않을 것 같은가. 글쎄요. 그건 저도 사실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두려운 마음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항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들릴 때마다 깨우침을 주시는 스승님들이 계시니 제가 가는 길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노신의 <고향>에 나온 글귀를 덧붙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거긴 몇 명 대학 보냈대? 서울대 간 애는 있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