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진민자 부부
이정환
착한 뇌성마비 아들과 귀농한 부부 이야기다. 아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건강 채소'를 키워냈고, 자연스레 '믿음'도 따라온 이야기다. 믿음을 '타고' 농원에 온 도시인들과 싱싱한 채소에 삼겹살을 싸 먹는 넉넉한 나눔이 결국은 '진심'에서 출발했음을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른 농사 착한 밥상'이야기다.
지난 20일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에 있는 두리영농조합법인을 찾았다. 잔뜩 을씨년스러운 날씨,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비닐하우스들을 기웃거리는데 저쪽에서 김상식(46)·진민자(45) 부부가 나타났다. 특이한 명함이다. 부부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또박또박.
김상식 "자꾸 여자들 이름 다 없어지잖아요."
진민자 "우리 조합 다른 분들 명함도 같아요."
김상식 "내 생각입니다."
진민자 "내가 앞에 와야 하는데…"
역할 분담 또한 '나란하다'. 아빠는 생산담당, 엄마는 유통·판매담당이란다. "돈 보고 농사짓지 않는다"는 아빠 말이나 "열심히 일만 하다보니, 돈은 자동으로 따라 오더라"는 엄마 말까지도 판박이다. 안 되겠다. 일단 두 사람 이야기를 따로따로 들어봐야겠다.
설날 태어난 아이, 그러나 기쁨도 잠시아빠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서 살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다닐 때도 돼지 키우겠다는 생각,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로 불리는 상상만 했단다. 도무지 직장 생활은 체질이 아니었다.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85년이었다.
김상식 "알로에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만 해도 처음이라 재미 좀 봤죠. 88올림픽 다음인가? 알로에 열풍이 불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알로에를 재배하니 과잉 생산이 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알로에 건강식품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광주에 대리점을 냈다가 1년 반만에 1800만원이나 까먹었지 뭡니까. 광주에서 크진 않아도 작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돈을, 허, 참."
'하필' 아빠가 빈털터리가 됐을 때 엄마와 결혼을 했다. 엄마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신랑 출근할 때 이마에 뽀뽀해서 보내주고,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주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헌데 "딱 결혼해 보니까 이미 초창기부터 물 건너 간 꿈"이었다. 노점상에, 통닭집에, 악착같이 돈을 벌던 그 때, 부부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김상식 "설에 첫 아이를 낳았어요. 1월 1일이 생일이니 기분 좋아 갖고 있는디, 백일 잔치를 하는데 애가 이상한 거예요. 고개에 힘이 없고, 눈동자가 자꾸 흔들리고. 병원에 데려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결국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죠. 그렇게 병원을 왔다갔다하니 장사도 잘 안 되고, 게다가 하루는 통닭집에 불까지 나버립디다."
언젠가부터 사라진 아빠의 환한 웃음 그리고 '똥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