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 Backer (1608/9 ~ 1651)의 그림 (렘브란트 하우스 특별전시)렘브란트의 그늘에서 조명받지 못하다 최근에 조명받고 있다고 한다. 역시 대형 상인들의 후원 아래 작품을 그렸다. 아주 엘레강스하다.
김난우
그러면 이러한 화려한 17세기 역사를 뛰어넘은 이후는 어떤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해상무역의 헤게모니를 넘겨주면서, 기록이 없다. 최소한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없었다. 나는 이후의 기록을 "네덜란드 저항기념관 (Dutch Resistence Museum)"에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여기 아무도 관광하러 가지 않는다. 난 영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가봤다. 물론 20세기 네덜란드가 나치의 침략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기념관은 1940년 나치의 침략 이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네덜란드가 경제적으로 잘 살고, 좌와 우가 균형을 맞추고, 지적으로 풍족하다는 사실을 이 기념관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기념관 구조가 우선 흥미로운데, 이름이야 저항기념관이지만, 사실은 생활사를 강조한다고 해야할까. 부끄러운 기록까지 남겨두는 센스를 보이고 있다. 기념관은 넓은 전시코스 하나와, 그 전시코스에 나뭇가지처럼 뻗은 다양한 세션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의 입구에, 대부분의 네덜란드인들은 넓은 전시코스에 진열된 것처럼 살았으며, '소수의' 사람만이 (나뭇가지처럼 뻗은 세션에 진열된 것처럼) 저항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며 강조해주고 있다. 유관순 '누나'가 (유관순님 노래에 왜 누나라고 되어있는지) 독립운동하다 옥사했다고 전국의 여고생들이 투쟁하다 죽은 것처럼 서술하는 한국식 역사 서술과 비견된다. 사실은 협력해서 먹고 산 사람도 있기는 있다고 글 썼다가, 역적으로 몰아붙이는 '전통'과도 대조된다고 본다.
전시관은 온갖 시청각 자료를 잘 동원하여 구성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신문자료 및 라디오 자료는 거의 다 네덜란드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시판에 붙은 영어 설명으로만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시작하기 전 배경설명에 나오는 설명들이다. 네덜란드가 나치가 침략하기 전 어떤 정신적 상태를 갖고 있었는지를 거의 세 줄 요약으로 정리해주는데, 첫째, 우리는 식민지 지배경험이 있었던 강대한 국가다, 둘째,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있는(네덜란드 로얄 오케스트라는 아직도 세계 최고라고 한다) 예술을 중시하는 국가다, 셋째, 세계적 항공사(KLM)를 보유하고 있는 기술적 능력이 있는 국가다, 이 세 가지다.
따지고 보면 다 17세기의 영광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오버해서 말하면, 이제 와서, 나 신라 왕족의 후예야 라고 주장하는 기분이랠까. 어디나 그렇겠지만 나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항목은 자기네들의 경제적 우월성과 식민지 지배를 할 수 있는 폭력적 기반이 있을만한 나라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용은 어떤가?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과 나라 최고의 도시 타이틀을 두고 경쟁해온 로테르담이 폭격으로 무너지면서 나치에 항복을 선언한다. 전쟁이 임박했고, 나치가 접근했고, 이런 위기에 대한 역사 서술이 나열을 이루고 그 다음 어? 정복됐네, 이런 다음 바로 다음 나온 장면은 일상으로의 복귀, 이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과 그 앞에서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사진은 뭐랠까, 현실적이면서 좀 잔인했다.
나치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왕족은 영국으로 피난 갔고, 나머지 행정부는 "최대한 국민을 위해 일한다"라는 원칙이 있다면서, 나치의 지배에 순응하고, 국민의 편의를 도모한다며, 일상생활에 충실한다. 나치는 애초에 네덜란드를 식민지로 취급하기보다 형제애를 강조하며 나치 이데올로기 하에 흡수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복지를 위한 제스쳐도 취한다. 겨울에 빈민자를 구제하는 정책을 편다거나 이런. 징병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나치가 네덜란드를 지배하면서 생긴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유대인 정책이다. 유대인 정책을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끔찍하다. 나치는 네덜란드 공무원들에게 조상 핏줄이 적힌 목록을 제출하라고 하고, 실제로 공무원들은 제출한다! 이후 유대계 공무원들은 단체로 직장에서 잘리고, 결국 독일 아우슈비츠로 유배되고, 70%가 죽는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가장 유명한 '안네 프랑크'는 네덜란드에 살던 유대인이다. (난 독일인 줄 알았다.) 안네 프랑크는 나치의 세력이 강해질 때, 집 책장 뒤 비밀 문을 설치하고 안으로 숨었다. 여기서 그런 사례가 안네 프랑크뿐만 아니라, 따로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