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해명은 궁색"... 법조계 안팎 비난 봇물

법원노조 "국민에게 고개 들 수 없어"... 민변 "정치검찰 이어 법원마저" 한탄

등록 2009.02.24 21:23수정 2009.02.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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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집중적으로 배당한 것에 대해 단독판사들이 법원장에게 집단 반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대법원은 24일 "단지 건의 차원이었지, 법원장에게 반발하거나 항의하는 집단행동은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대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법원 내부인 법원공무원노동조합조차 "궁색한 변명으로 국민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비판하는 등 법조계 안팎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대법원은 24일 긴급 해명자료를 통해 먼저 "쟁점이 유사한 사건에 대해 동일 재판부에 배당하는 것은 여러 재판부에 배당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다른 결론이나 양형 편차를 가급적 없애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법원의 관행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배당예규'에서도 오히려 그러한 사건의 경우 동일한 재판부에 배당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배당권자가 동종 사건을 일반적인 배당절차와 달리 '적절하게' 배당할 수 있음을 명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재판예규 제1212호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는 사건배당은 사무분담에서 정한 재판부의 배당순서에 따라 사건 1건씩을 각 재판부에 배당순위번호의 순서에 따라 배정하도록 돼 있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규정을 근거로 쟁점이 동일한 사건, 사안의 내용이 복잡하거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 등 기타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건은 사건 배당 주관자가 사무분담의 공평을 고려해 적절하게 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 결론이 다르거나 양형 편차가 날 것을 미리 우려해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는 주는 것은, 사실상 사건에 개입하는 것으로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위협한다는 게 재야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문제가 된 촛불시위 관련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법원에 접수되던 초기 당시 배당권자는 접수사건이 많지 않은데다 같은 종류의 사건인 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인 점을 고려해 2명의 단독 부장판사에게 배당할 것을 검토했으나, 당시 한 명의 단독 부장판사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과중한 것으로 판단해 다른 단독 부장판사에게 8건을 모두 배당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접수 초기에는 기소가 예상되는 촛불시위 관련 사건들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러다가 관련 사건이 다수 접수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그 상태에서 초기 사건들을 배당받은 부장판사가 그로 인한 업무부담이 과중하다는 취지의 말을 주위 판사들에게 했고, 법원장에게도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 무렵 일부 단독판사들 사이에서도 촛불집회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으니만큼 관련 사건들이 한명에게만 연이어 배당되는 것은 자칫 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며 "이에 당시 신영철 법원장이 단독판사들을 불러 모아 면담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면담 당시에는 이미 추후 정식 기소될 사건이 더 있을 것으로 알려졌고, 약식명령 대상인 사건의 피고인들조차도 모두 정식재판을 청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뚜렷했으므로 법원장 입장에서도 이후 접수되는 사건들을 특정 재판부에만 배당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특히 "당시 기존의 배당결과가 절차적으로 또는 관행상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법원장이 기존의 배당이 잘못됐음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도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원장이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만 배당하면 자칫 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부분을 알고 있고, 또한 면담을 통해 판사들의 의견을 청취한 법원장이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자동배당 방식으로 전환할 것임을 언명했을 뿐이고, 이후로는 골고루 배당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당시 단독판사들의 의견 전달은 외부적인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한 건의 차원이었지 법원장에게 반발하거나 항의하는 형태의 집단행동은 아니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 법원노조 "국민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하지만 사법부를 바라보는 법조계 안팎의 시각은 곱지 않다. 먼저 법원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병욱)은 즉각 성명을 통해 "법원이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식으로 배당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법원노조는 "쟁점이 비슷한 여러 사건의 양형의 차이나, 원만한 심리를 위해 몰아주기식 배당은 일반적인 것이라는 대법원의 변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며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개별 사건을 고독하게 재판하는데, 국민 앞에 선서한 법관의 양심은 결코 동일하게 개량화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인위적으로 재단하려고 하였던 시도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며 국민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뿐만 아니라 여러 논란과 요란한 청문회 과정 속에서 새롭게 대법관으로 임명된 신영철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핵심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우려스럽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작금의 사법부가 처해 있는 총체적 위기의 원인은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당사자가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정확한 사실규명이나 이에 다른 책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없다면 향후 국민들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를 운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원노조는 특히 "명예롭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수많은 법관들이 수년을 근무한 후에 느끼는 명예감은 이미 이름 있는 로펌의 손짓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 옷을 벗고 싶어 하는 현실이 오늘의 사법부의 현실임을 법원당국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민변 "정치검찰 뒤를 쫓아 법원마저도 정권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처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도 성명을 통해 "서울중앙지법이 자동배당을 하지 않고 보수성향의 특정 판사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주었고, 이에 대해 형사단독들이 법원장에게 항의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헌법에 따라 법관의 양심을 걸고 재판을 해야 하는 판사들이 집단으로 항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울중앙지법이 법과 양심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검찰의 뒤를 쫓아 법원마저도 정권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판담당 판사들 거의 모두가 집단으로 항의를 할 정도라면 법원이 사건배당을 정치적으로 했다는 의혹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일괄배당을 받는 보수 성향 판사가 촛불집회 과정에서 조선일보사에 쓰레기통을 던진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과 벌금형이라는 과도한 형을 선고한 것도 이러한 법원 상층부의 주문에 따른 것이 아닌지도 의혹"이라고 덧붙였다.

 

민변은 "사건배당에 관여한 형사수석부장판사는 관련사건 일괄배당 관례에 따라 한 판사에게 집중 배당했다고 해명하지만, 하필이면 보수성향의 판사에게만 집중배당을 했는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가 없다"며 "그 판사가 보수성향인지 몰랐다는 것은 충실한 해명일 수 없고, 그것은 사건을 배당할 능력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법은 정치적 의혹이 짙은 사건배당 방식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밝혀야 한다"며 나아가 "이 사건이 최근 승진한 신영철 대법관이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고, 직접 항의하는 판사들을 만나 시정을 약속했다고 하는 만큼 신영철 대법관 스스로 당시 사건 배당과정과 항의하는 판사들에게 어떤 해명과 후속조치를 취했는지를 직접 밝혀야 할 것"이라고 신영철 대법관을 압박했다.

 

민변은 "우리는 검찰이 이명박 정부 이후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검찰권 행사를 하고, 법리적으로도 무리하게 수사, 기소하는 행태를 비판함과 동시에 최근 들어 구속영장 심리 등에서도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법원의 태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헌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심판하려는 정의로운 판사들의 양심을 법원이 꺾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경고했다.

 

◆ 참여연대 "사법부를 정치화 의혹에 빠뜨린 중대한 사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하태훈 고려대 교수)도 성명을 통해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기 할 합당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의문을 가지며, 만약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이는 사건을 배당할 권한을 가진 고위 법관들 스스로 정치에 종속돼있던 과거 군사독재시절처럼 사법부를 정치화 의혹에 빠뜨린 중대한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같은 법원의 여러 판사들이 공동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도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고, 국민들로부터 사법부마저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경위가 명백하게 해명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예외적으로 특정 판사에게 사건을 몰아서 배당했다고 하더라도, 왜 외국인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에 배당했는지를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인 신영철 현 대법관과 당시 사건배당자였던 허만 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먼저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아울러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판사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몰아준 것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법원이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것으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고, 특히 법원 내부의 고위 법관에 의한 정치적 독립성 훼손행위는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그러면서 "몰아주기 배당이라는 논란을 일으킨 당시 형사수석부장판사인 허만 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당시 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며 "그리고 사법부 전체의 명예와 신뢰에 관한 매우 중대한 문제인 만큼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진상을 규명하고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09.02.24 21:2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로이슈 #대법원 #사건배당 #민변 #법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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