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사진관전사진관 주인 최광남(55)ㆍ임경희(53)부부는 첫 신혼집이 사진관 이었고, 사진관이 곧 신혼집이었다고 한다. 동암역 남광장이 조성 될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딸이 잇고 있다.
김갑봉
집 대신 장만한 '아들' 같은 인화기
디지털카메라가 많은 이들에게 보급되면서 사진관이 잘 될 줄 알았다. 사진기가 많아졌으니 당연히 인화하러 오는 사람들 또한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오히려 동네 사진관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인천 부평구 십정동 동암역 남광장에서 '역전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광남(55)ㆍ임경희(53) 부부의 얘기다. 최씨의 선친 최응식 선생(1993년 작고)께서 처음 사진관을 연 1964부터 지금까지 꼬박 45년 세상사를 필름에 담아오고 있다.
황해도가 고향인 고(故) 최응식 선생은 한국전쟁 와중에 홀로 인천에 정착했다. 그리고 당시 만석동 삼화제분 앞에 '부흥사진관'을 열었다. 그때 최광남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4년 뒤 제물포역 당시 화룡소주공장 앞으로 옮겼다가 도로가 개설되면서 무허가 건물에 살던 최응식 선생은 74년 이곳 동암역으로 와 역전사진관의 전신인 동암사진관을 다시 냈다.
최광남씨는 선친으로부터 사진을 배웠다. 최응식 선생은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안 좋아지자 카메라에서 손을 때고 아들한테 전적으로 맡겼다. 그리고 현재는 최씨의 둘째 딸이 최씨로부터 사진관일과 사진을 배우고 있다.
최씨는 "그땐 사진 티켓할인권을 판매하러 다니던 사진관 외무원(외판원)들이 많았어요. 사진관 영업해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지금처럼 홍보 방법이 많지 않을 때라 그 외무원들이 '이 사진관 가면 얼마 할인해주고 수건도 주고 설탕도 준다' 하면서 영업하러 다니곤 했는데 글쎄 그 사람들이 부풀려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 사진관에서 '왜 설탕 안 주냐'는 항의를 숱하게 받곤 했었다"라고 전했다.
군 입대 전까지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사진관을 맡았다. 아버지는 동암역에서 최씨는 주안 석바위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동암역 북광장에 있던 사진관은 최씨가 결혼한 뒤 81년 현재 위치인 남광장으로 옮긴다. 이제 어느 정도 사진기술이 늘은 임경희씨는 당시만 해도 사진 찍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한다.
임씨는 "결혼해서 서울 살다 인천으로 왔는데 그때 우리 건물하고 양 옆 건물 제외하고 다 벌판이고 저 앞쪽(북광장)은 양계장이었어요. 그때 시어머니가 분가해서 열심히 살라며 일부러 남광장이 조성될 때 가게자리를 잡아주셨어요. 사진관에 딸린 방 한 칸이었는데 사진관이 좀처럼 잘 안돼서 남편은 일터로 나가고 저는 남편이 일러준 대로 촬영해놓으면 남편이 퇴근 후 수정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인화를 하던 때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련한 돈 5000만원으로 최씨와 임씨는 큰맘 먹고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사진인화기를 장만했다. 당시 빌라 한 채 값이 5000만원이었다. 그 인화기는 20년이라는 손때가 묻었지만 지금도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며 부부의 '아들' 노릇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