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어석길이 500여m, 너비 100여m에 이르는 계곡에 펼쳐진 암괴지대, 만어사 너덜.
장호철
이 바위들이 '만 마리 물고기', 만어(萬魚)다. 만어사는 <삼국유사> 권3 탑상(塔像) 제4 어산불영(魚山佛影) 설화의 현장이다. 설화는 가야의 수로왕과 이어진다. 이곳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가 가락국의 옥지(玉池)에 살고 있던 독룡과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내려 네 해 동안 오곡이 결실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로부터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이들 돌에서는 신비로운 경쇠소리가 난다.
수로왕이 이를 기려 이 산에 만어사를 창건했다. 전설은 그때를 46년(수로왕 5)이라 전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만어사는 창건 이후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고려와 조선조에 각각 중창되었다고 한다.
전설에도 불구하고 절집 경내에 가득한 바윗돌은 내력에 대한 궁금증만 더한다. 그래서 새로운 설화가 만들어졌던가.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해 낙동강 건너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의 땅이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온갖 종류의 고기떼가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집이었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숱한 고기들은 크고 작은 바윗돌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전하는 내용이다.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되었다는 서북쪽의 큰 바위는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그림자'[불영(佛影)]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불영에 관한 내력'도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이야기는 그러나 전후 맥락이나 상황으로 미루어 절집 아래 가득한 만어석(萬魚石)을 시원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곳 암괴는 지질학적으로 2억 년 전인 고생대 말에서 중생대 초 사이의 퇴적암층인 청석(靑石)이라고 한다. 그것은 수로왕이나 부처님과는 무관하게 거기 ‘있었던’ 바윗돌이다. 거기다 고기와 용, 부처님의 이적(異蹟) 따위를 붙인 것은 세월과 함께 변신을 거듭해 온 사부대중의 상상력인 것이다.
어산불영 설화에 담긴 관점은 두 가지로 풀이된다고 한다. 하나는 신라가 ‘부처의 나라’였다는 ‘불국토 사상’, 나머지는 용왕과 신화적 통치자(수로왕) 들도 부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불교 우위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서로 넘나드는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