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의 계기판에 빨갛게 불이 들어왔다. 계기판은 내 DBF 패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감상하는 녀석이다.
김학현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못 마땅해 하는 친구에게 '그런 어머니가 있음을 감사하라'고 하던 어머니를 일찍 잃은 사람의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그렇다. 내게 있어 아내란 그런 존재다. 그러기에 평소에 과묵한 아내가 무엇인가를 트집 잡고 나오면 그날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 다가오고픈 속내의 표현이니까.
아내는 내게 말을 걸려다 보니 운동습관이며 운동복 패션을 운운하는 것뿐이다. 운동습관은 그렇다 치고 우리부부의 운동복 패션은 몹시 과학적이다. '다 벗어 패션'이라고 들어 보셨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집안에서 러닝머신을 할 때만 그런 패션을 즐긴다. 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속옷 채로이기에 운동을 하고 땀이 젖으면 그냥 빨면 되니 참으로 경제적이다.
훌러덩훌러덩 옷을 다 벗어젖히고 운동에 돌입한다. 대부분 팬티와 러닝셔츠바람이다. 이젠 아이들도 없고 두 부부만이니 누가 본다고 격식에 맞는 운동복을 갖춰 입으랴. 오늘 아침 아내의 불만은 왜 웃옷을 입었냐는 것이다. 혹자는 왜 옷을 벗고 운동을 하느냐고 하는 걸로 오해했겠지만. 하하하.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그러니까 우리부부는 서툰 운동선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샌 운동복도 패션시대다. 기능성 운동복이라고 해서 얼마나 고가인지 모른다. 솔직히 우리부부에게는 변변한 운동복이 없다. 혹 가다 지방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고 싸구려로 사주는 운동복이 둬 벌 정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복은 잘 맞지를 않아 즐겨 입지 않는다.
서툰 목수일수록 연장 탓을 한다. 게으른 사람일수록 일 안 할 구실만 찾는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핑계거리를 찾는다. 그림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 물감 탓을 한다. 나도 이런 상황들에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지만 운동할 때만은 운동복을 탓하지 않는다.
땀을 좀 더 많이 내려면 입고 있던 웃옷은 그냥 입고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하의는 입으면 금방 땀 때문에 끈적거려 운동을 방해하니 애초부터 팬티바람이 좋다. 운동복이 따로 없기에 빨랫감이 더 늘지 않는다. 일석이조 운동복 패션, '다 벗어 패션' 어떤가? 이니셜 전성시대니 우리 집에선 이런 패션을 'DBF'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갓피플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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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할 때, '다 벗어 패션(DBF)'이라고 아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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