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빈산 정상 이정표에 걸려 있는 다산선생의 글
이승철
“여긴 다산 정약용의 시 한 수가 걸려 있네.”
“정말 그러네, 그러고 보니 산행 시작 때부터 이정표마다 시 한 수씩 걸려 있었잖아? 다산선생의 고장이라 다르긴 다르구먼.”
경기 남양주 한강가에 우뚝 솟아 있는 예봉산에 올랐다가 율리봉을 거쳐 예빈산에 올랐을 때였다. 예빈산 정상인 직녀봉에도 이정표가 서있었는데 다산 정약용의 글이 송판에 새겨져 걸려 있었다.
“우리 집 동녘에 있는 물과 구름 마을인데 가만히 생각하니 가을이면 즐거운 일 많았었지, 밤 밭에 바람 불면 붉은 알밤 떨어지고 어촌에 달이 뜰 때 자줏빛 게맛 향긋했지, 마을길 잠시 걸어도 모두가 시(詩)의 소재, 돈들이지 않아도 주안상은 있다네, 객지생활 여러 해에 돌아가지 못하니 고향편지 볼 때마다 남몰래 마음 다치네.”
다산 정약용이 오랜 유배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며 쓴 글이다. 산꼭대기 이정표에 걸려 있는 다산의 옛글을 읽으며 시공을 뛰어넘는 절절한 그리움이 읽는 사람들까지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글과 시는 산행 들머리인 예봉산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었다.
급경사 오름길에서 한 끼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쩔쩔매다지난 2월 17일은 서울지방의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갔다. 본래 강원도에 있는 높은 산을 계획했다가 너무 추운 날씨에 무리일 것 같아 계획을 변경하여 오른 산이 남양주 한강변에 불쑥 솟아 있는 예봉산과 예빈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