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는 어디에나 '호메이니'가 있다

[이란 여행기 4] 여자가 없는 테헤란 밤풍경

등록 2009.02.19 13:41수정 2009.02.19 13:42
0
원고료로 응원
공항에서 테헤란 시내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은 것은 이란을 왕정국가에서 이슬람근본주의 국가로 변신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입니다. 그들의 사진이 박힌 입간판이 시내 곳곳에 서있습니다.

호메이니는 열정이 넘치는 혁명가로 보이면서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하메네이는 좀 더 지적인 학자풍의 얼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메네이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지만 역사를 통해 봤을 때 뭔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호메이니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테헤란 지하철역명 가운데는 이맘 호메이니역이 있는데 이란에서 유일한 환승역입니다. 그리고 테헤란에서 가장 큰 모스크 또한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들어온 테헤란 시내 뿐 아니라 이란 전역 어디를 가더라도 호메이니의 사진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란 어디를 가도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사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진은 카샨에서 찍은 하메네이의 사진입니다. 종교인의 느낌이 강한 사진이었습니다.
이란 어디를 가도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사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진은 카샨에서 찍은 하메네이의 사진입니다. 종교인의 느낌이 강한 사진이었습니다.김은주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술을 금지시키고 여자들에게 차도르를 입힌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자인 우리조차 머리와 목덜미는 머플러로 가리고, 엉덩이 실루엣을 숨기기 위해 바지 위에 치마를 덧입어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새로운 스타일로 다니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우리가 테헤란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는 자정이 넘어서였습니다. 징수원이 남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톨게이트 징수원은 주로 여자가 하는 일이라 남자 징수원을 보자 좀 이상했습니다.

“왜 저 일을 남자가 하지요?”

이란 사람들이 한국에 왔다면 나와 같은 어조로 물었겠지요.


“왜 여자가 저 일을 하지요?”

나의 우문에 길대장은 성실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이란에서는 밤에 하는 일은 여자를 시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요.


예전에 밤을 새우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힘든 고역에서 여자를 면제시켜준다니 꽤 괜찮은 나라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거리에는 여자가 한 명도 안 보였습니다. 자정이 넘었지만 남자는 더러 보이는데 여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였습니다.

우리 옆을 달리던 운전자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자들로 가득 찬 버스를 보자 깜짝 놀라고 마침내 넋을 잃은 표정으로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허깨비나 외계비행물체를 봤을 때의 표정이 아마도 그런 표정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이면 여자라고는 볼 수 없는 나라에서 여자들로 그것도 외국여자들로 가득한 버스를 만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게지요. 앞을 보고 운전해야 하는데 우리를 쳐다보느라 옆을 보며 운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불안했습니다.

 우리가 묵은 숙소 근처의 밤풍경.
우리가 묵은 숙소 근처의 밤풍경. 김은주

우리를 공항에서 픽업해준 봉고차 운전사 알리는 영어를 모르고 우리는 페르시아어를 못 하고, 그래서 운전기사 알리와 우리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조용한 공간을 이란 음악이 채웠지요. 남자 가수가 부르는 이란 음악을 들으면서 테헤란의 밤을 바라봤습니다.

좀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곳이 잘 사는 동네가 아니라 테헤란 남부 가장 오래된 도시라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어느 나라든 가장 먼저 생긴 곳은 낡고 슬럼화 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머문 숙소가 바로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짙은 콘크리트 컬러와 낡은 이미지가 합쳐지고, 밤 문화가 사라진 후 정적이 고여 있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 마침내 오늘 밤을 머물 곳에 당도했습니다. 테헤란 남부 아미르 캬빌 스트릿에 있는 마샤드 호텔입니다.

단돈 5천원이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이란에서 가장 싼 숙소였습니다. 길대장에게서 가장 싸다는 말을 듣고 좀 걱정했는데 공용화장실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깨끗하고 첫 날 밤을 보내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란 #하메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5. 5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