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나무와 숲'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도 학교에서 재미있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이야기를 들어줄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가, 숙제나 공부를 도와주고 준비물을 챙겨줄 엄마가, 제 때 식사를 챙겨줄 엄마가 안 계시는 집을 대신해 주는 곳" 이다.
김현
지역아동센터에 나오는 아이들은 이 학생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다. 김현숙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동네에 있을 때는 잘 몰랐어요. 복지관에서 방과후교실 교사를 하고 아이들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면서, 아! 우리 동네에도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죠." 아이들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던 김현숙 공동대표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동네에 있는 사회복지관이 어느 정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평일에는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토요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았기에 시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복지관은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동선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무와 숲'은 그런 현실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동네 아이들이 복음자리다. 아이들을 모으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다.
전자오락기 앞에 앉은 아이를 만나다 밤중에 한 아이가 구멍가게 앞 전자오락기 앞에 앉아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다가가 늦은 밤까지 왜 여기에 있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밤 10시쯤에 온단다. 그때가 돼야 저녁밥을 먹을 수 있단다.
김현숙 공동대표와 이현주 공동대표는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무와 숲'의 취지를 설명하고 아이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오픈하는 날 13명의 아이들을 모였다. 그리고 13명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통해 금방 34명의 아이들이 찼다. 사실 수요는 많았다. 50명이든 100명이든 어려운 상황의 아이들을 채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50평 남짓한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의 수는 한계가 있다. 너무 많아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급한 아이들 위주로 받았다. '나무와 숲'을 지키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 동안 정부가 지역아동센터로 보조하는 지원금은 한 달에 220만원이었다. '나무와 숲'에 온종일 상근하는 교사가 3명, 월세 100만원, 각종 공과금과 각종 프로그램 진행비, 교재비 등등 220만원은 그야말로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는다.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하기도 했고 지역사회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후원자를 모집하기 쉽지 않다.
김현숙 공동대표에 의하면 "근근이 이어가는 상황"이다. 소액이라도 안정적으로 CMS로 후원해주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 한 달에 후원하는 이는 120여명 정도다.
34명의 아이들은 그냥 모든 '아이들'이 아니다. 그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아온 맥락들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34명의 '무리'가 아니라 독립된 34명 '각각의' 아이들과 마주쳐야 한다.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개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각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상담하고 같이 놀아줄 수 있는 1:1 멘토 자원활동가들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기왕이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젊은 대학생들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유기농을 장려하려면 '가정의 식탁' 부터 바꿔야 동네로 눈을 돌리면 아직도 이웃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이 가진 시간이나 능력, 재산의 일부를 나누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무와 숲'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조금씩 나누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정부의 정책이 완벽할 수 없기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이 공공성을 더 확대시킬 수 있도록 요구해가면서, 한편으로 동네 단위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려는 시민들의 실천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 깊게 고민할 기회가 적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법제도가 많은 것을 해결할 것으로 믿어왔는지 모른다. 농업을 살리면서 유기농을 장려하려면 가정의 식탁에서부터 고민되어야 하고, 교육으로부터 소외받는 아이들이 있다면 삶의 터전에서부터 그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이 생활공간에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현대적 의미로서의 공동체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작은 영웅'들이고 사회의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