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사회를 사실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이 보도를 보고 불현듯 떠올랐던 것은 바로 내 현역 시절 '내무 검사 시간'이었다. (지금은 '병영생활지도'라는 표현으로 순화되었다) 육군 표준일과표에 따르면, 일일 단위로 총기 등 전투 품목을 점검하고, 매달 '부대관리 주'에는 사병들의 속옷, 보급품 등 소모성 품목들의 점검토록 돼있다.
'내무 검사'는 '부대관리 주'에 행해지는 것으로 사병과 생활관, 담당 청소구역의 청결 상태를 비롯한 개인 소모품 현황을 조사한다. 우리 부대는 특히 개인 소모품 개수에 집착했다. 당월 지급된 개인 소모품의 개수와 보유하고 있는 개수가 동일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보급품 관리 소홀'로 생활관 별 분대장이 벌점을 받았다.
세안비누나 빨래비누, 그리고 구두약은 이미 남아돌아 부족할 일이 없었다. 잃어버려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었다. 대부분 클렌징 폼이나 사제 면도기를 써서 '내무검사용'으로만 보급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간부들도 사병들이 보급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X에 비치된 물품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가격을 떠나 '질'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경기도 A 부대에서 PX병으로 근무하는 내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형, 너무 어이가 없다. 치약, 칫솔, 구두약을 제외하고 보급품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 간식 다음으로 PX에서 잘 팔리는 물품이 바로 클렌징 폼, 샴푸와 같은 세안 물품이야."비누와 면도기는 남아도는 반면, 보급품 중 개인이 한 달 간 쓰기엔 부족한 용품이 있었으니 바로 두루마리 휴지였다. 한 달에 지급되는 두루마리 휴지는 단 하나. 화장실 뒤처리, 코 풀기, 손 닦기 등을 하나로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계급이 높은 선임병들이 후임병의 휴지를 몰래 쓰거나 함부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결국 휴지는 받자마자 유성 매직으로 상단면 부위에 이름을 커다랗게 써놓아야 하는 우스운 꼴이 매달 벌어졌다(휴지를 쓸수록 이름이 점차 위에서부터 아래로 깎여나간다).
보급품 품질 개선 노력도 없이 푼돈만 쥐어주는 국방부어떤 보급품은 부족하고, 어떤 것은 남아돌아 처리 곤란한 실태가 매년 반복되는 가운데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예산 낭비' 타령을 해댔다. 국방비 전체 예산 중 2%에 불과한 사병들의 월급을 올렸다고 생색내면서, 정작 부대 내 장병들의 보급품 수요량과 만족도 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보급품 품질도 마찬가지다. 장병들이 직접 사용하며 체감하는 비누나 빨래비누, 면도기의 질은 수년간 그대로다. 군용 가루비누를 넣고 세탁기를 돌리면 물에 잘 용해되지 않아 빨래에 덕지덕지 묻기 일쑤고, 빨래 비누는 걸레 빠는 용도로만 사용되어 항상 관물대 빈칸에 층을 이뤄 쌓여있다.
면도기 날 또한 거칠기 이를 데 없어 자칫 얼굴에 상처 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때문에 현역들은 월급의 일부를 축내가며, 내무검사 때 걸릴까봐 보급품을 숨겨가며 묵묵히 '그러려니'하고 참아 왔다.
의무복무제를 시행하는 이 나라에서 열악한 보급품에 대한 개선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통장에 단돈 1386원이 들어온다는 것이 장병의 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당국은 고려해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한 번이라도 충성클럽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병영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가.
2008년 2월에 전역을 앞두고 한창 보급품 지급이 중단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던 때, 후임병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김 병장님, 이제 제가 쓰고 싶은 것만 살 수 있게 되니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그 후임병은 국방부의 "문제 발생 시 차후 보완하겠다"는 말만 믿어야 할 것 같다. 참 좋은 '실용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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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분들은 모를 '병영생필품 1386원'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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