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단풍이 있어요. 하지만 연이 아열대성 식물이어서 가을 밤 찬 서리를 맞으면 단풍을 맞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기 일쑤에요. 그래서 단풍 보기는 그리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일부 지역에서는 볼 수 있어요. 대략 새잎이 난지 60일 정도가 지나면 단풍이 들죠. 새 잎한테 영양분을 주고 노(老)잎은 사라지는 거에요. 어찌 보면 사람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죠?”
서울에서 잘 나가던 사업체 사장님 자리를 내려놓고 귀농을 한 지 12년. 그에게 화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풍족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시작한 농촌 생활은 그에게 더 풍족한 삶을 주었다. 물론 경제적 풍요로움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도시에서 사장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것이 편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게 두려웠다.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도시 생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을 직감했다. 그가 귀농을 결정하고 화천으로 내려온 때가 96년. IMF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동료에게 회사를 넘기고 내려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마을 주민들은 그를 따뜻이 맞이해줬다. 그 역시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지역 주민들과 융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농을 하는 사람 모두가 서대표처럼 주민들과 쉽게 어울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지역 주민들의 텃새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귀농에 실패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귀농을 하는 데 있어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 서대표가 생각하는 묘책은 무엇보다 먼저 손 내밀고, 한 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지역하고 융화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것이 우선이죠. 이 지역에 먼저 살고 계신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존중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이 해결될 거에요. 그 마음이 변치만 않는다면 말이죠. 또 내 것을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면 나중에 그 분들이 주시는 정이 더 클 거에요.”
서대표와 함께 꽃빛향을 운영하면서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이호상씨도 귀농을 한 케이스다. 들꽃마을 리더로 활동하는 그 역시 마을 주민들과 관계 맺기가 가장 어려웠다.
“처음에 여기 살겠다고 왔을 때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사기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어떤 이는 미쳤다고 해요.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거죠. 그런데 묵묵히 들꽃마을을 위한 집과 공원을 만들고, 일을 해 나가니까 어느 때부턴가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이제는 동네 노인들이 나서서 돕고 있어요.”
꽃빛향 3개 마을이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아름다운 테마 단지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지역 주민을 위한 수익 사업도 해가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명실상부 살기 좋은 농촌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대표가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저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더불어 사는 마을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모두 잘 사는 길이라 그는 믿는다.
“공동체 의식으로 같이 나누고 어우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웃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도시처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뿌리 내리지 않도록,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우리 애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도 나름의 꿈이고요. 힘들고 어려우면 다시 찾게 되는 고향. 그 소중한 추억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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