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비록 속옷차림에 침대 위이지만 사진 포즈만큼은 신세대 뺨친다.
김학현
‘지랄’이란 뭘까? 갑자기 이 단어가 몹시 궁금해졌다. 국어사전을 보니, ‘재랄하다, 육갑(六甲)하다, 변덕부리다’가 비슷한 말이란다. ‘변덕스럽고 함부로 행동함에 대한 욕’을 일컬어 ‘지랄’이라고 한단다. 하하하. 그러니까 내 곁에서 계속 소위 ‘지랄하는 할머니’ 얘기를 하는 할머니도 종은 같은 종인 듯싶은데. 할머니는 지금 다른 할머니 ‘지랄하는 이야기’에 푹 빠지셨다.
가끔 이 할머니에게 지목된 그 할머니는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 특유의 버릇을 가지고 있다. “야!” 우선 반말로 아무에게나 이렇게 부른 다음 자신의 필요를 외쳐댄다. “야! 거기 있는 방석 이리 줘!” 오늘 아침예배 때도 다들 조용히 묵상하고 있을 때 벼락같이 이렇게 소리를 냅다 질러대는 바람에 한동안 교회 뒤쪽이 어수선했었다.
“어이구! 또 지랄이네! 이그, 지겨워!”에서부터 “누가 야야? 이 년아!” 그리고 “시끄러워! 이 할망구야!”로 이어지는 질펀한 욕 시리즈물이 난무했었다. 할머니의 “야!”로 시작한 한 마디는 금방 그 할머니 주위를 온통 적들의 본거지로 만들어버린다. 누구 하나 할머니의 요구에 좋은 반응을 할 생각을 하는 어른은 없다. 하는 수 없이 강단에 엎드려 있던 내가 슬금슬금 내려가 할머니 휠체어 곁으로 가 방석을 집어주는 수밖에.
그러고도 그 상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기미! 내가 뭐라고 하면 눈들만 흘기고 욕지거리들만 하지 들어 주려고 하지도 않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 더러운 년들아!”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신다. 그러나 주변의 눈짓과 욕지거리는 용케도 들으신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 저 년들이 날 무시하니까 그렇지! 지들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 응? 자식 못 낳았다고 그러는 거야? 씨×× 년들”목소리가 더 높다. 할머니의 분은 쉽게 삭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쉿!” 하며 입술에 가져다 댄 손가락을 보면서 잠시 후 조금 움칠하며 수그러드신다. 그래도 이럴 때 목사라고 봐 준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할 때가 많다. 다른 어른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막무가내다. 그러나 그래도 내 앞에서는 듣는 척한다.
그래도 설교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