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황금빛 비밀'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입구의 대형홍보물
김형순
현대미술사에 상징주의로 큰 획을 그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황금빛 비밀-토탈아트를 찾아서'展이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5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은 주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Belvedere) 국립미술관이 소장해온 것으로 드로잉과 유화 등 대표작 등 110여 점을 선보인다.
빈 분리파(Wiener Sezession) |
프랑스인상파에서 독자적 노선을 걸었던 앙데팡당이 있었듯이 빈에서도 상업적이고 관료화된 기존화단에 반발하여 과거의 모든 미술로부터 분리한다는 뜻에서 1897년 클림트가 주도하여 만든 미술유파다. 다음해 1월에는 월간지 '베르 사크룸(Ver Sacrum, Sacred Spring 성스러운 봄)'을 내고 3월에는 제1회 빈 분리파전을 열기도 한다. 클림트는 참신한 화가들을 발굴하여 전시도 주선한다. 한편 모네, 샤반 같은 외국작가도 소개하며 오스트리아에 모더니즘을 뿌리내린다. 그의 영향은 전 유럽으로 퍼진다. |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창시자로 지구상에서 그림이 가장 많이 복제되는 인기작가다. 워홀이 상업미술을 하다가 화가가 되었듯 클림트는 장식미술을 하다 화가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건축이나 벽화, 상업미술이나 순수미술의 경계를 넘는 토탈아트(총체예술 Gesamtkunstwerk)를 낳는다.
그가 30살이 되던 해 같은 예술의 길을 걷던 동생 에른스트를 잃고, 부친마저 돌아가자 심적 공황에 빠진다. 그래서 남은 동생, 조카,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다. 세기말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이런 개인사가 그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인식과 불안을 더 촉발시켰는지 모른다.
물론 당시 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페미니즘이 통한 건 아니지만 남자들은 모든 죄를 여자에게만 덮어씌우던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하여간 클림트는 남자로서 여자가 되어 성해방을 주도적으로 이끈 작가 같다.
그가 보는 여자의 심미안은 남다르다- 여성미에 대한 빼어난 탐구자(1883~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