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용산 참사' 책임으로 사퇴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후임으로 강희락(56·치안총감) 해양경찰청장을 내정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강 내정자는 경찰 내 보기 드문 사법시험 합격자(26회) 출신으로 지난 1988년 경정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경찰청 경무과장(총경), 경기경찰청 수사과장, 서울중부경찰서장,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공보관(경무관), 워싱턴 주재관, 경찰청 수사국장(치안감), 대구·부산경찰청장,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등 경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지난해 3월 7일 해양경찰청장(치안총감)으로 임명됐다.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뒤를 이어 경찰청장으로 지명된 강 내정자의 임무는 막중하다.
'용산 참사'와 '청와대 이메일 지침' 등 대형 사건에서 거듭된 거짓 해명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현재, 청와대로선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을 추스릴 수 있는 강한 실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강 내정자를 '낙점'한 데는 이런 배경이 포함돼 있다.
'한화 김승연 보복폭행' 당시 "이택순 사퇴" 요구 부하들 반발 잠재우기도
강 내정자는 경찰 내부에서 '수사통'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오랜 공보관 생활로 언론 홍보의 생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강 내정자의 이력 속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강 내정자는 경찰청 공보관으로 임명된 지 2개월 뒤인 지난 2001년 2월 각 부처 공보관실과 언론사 편집국장·논설위원·사회부장 등 1000여 명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경찰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전임 공보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강 내정자는 이 편지에서 "경찰권 행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또 "경찰은 더 이상 일제시대 순사나 자유당 시절 정권의 하수인, 군사정권 시절 최루탄을 쏘며 데모나 막는 짭새가 아니다"라며 "국민들로부터 존중받는 경찰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썼다.
8년 전 쓴 그의 편지는 이제 15만 경찰의 총수로 새 임무를 맡은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다"라던 강 내정자는 당장 '청와대 이메일 지침'에 대한 거짓말로 또 한번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경찰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지경이다.
강 내정자는 지난 2007년 4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파문이 일었을 때 경찰청 차장으로 '지휘라인'에 있었다. 당시 검찰은 '보복 폭행 은폐 의혹'이 커지자 강대원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 장희곤 전 남대문서장 등 실무책임자들은 물론 이택순 전 경찰청장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강 내정자도 예외 없이 서면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청장과 강 내정자는 '요행히' 책임을 피해 갔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이 전 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경찰청 차장이었던 강 내정자가 "경찰청장 사퇴를 주장하는 경찰들에게 엄중 경고, 징계하라"며 진압에 나섰다. 결국 이 사건은 장희곤 전 서장 등 수사 실무책임자들이 옷을 벗고 형사 처벌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이 전 청장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옛날 경찰은 무도 단증만 있으면" 구설수... 부하들 인권위 진정 '해프닝'
이밖에도 강 내정자는 지난 2004년 7월 경찰청 수사국장으로서 '연쇄살인범' 유영철 수사를 주도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자메시지 부정행위 사건도 원만하게 마무리한 이력이 있다. 또 이 시기에 경찰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사경과제'를 도입해 성공시킨 공로도 있다. 수사경과제는 수사경찰을 일반경과에서 분리해 별도의 경과를 신설한 것으로, 수사전문가 양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과의 경합에서 밀려 해양경찰청장으로 옮긴 뒤로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 선원들의 집단폭행으로 부하직원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강 내정자의 임명에 경찰 내부의 반발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사법시험 출신인 강 내정자가 한때 경찰 하부조직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적은 있다.
경찰청 차장 시절인 지난 2007년 5월 강 내정자는 전남지방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경찰의 인력충원 구조를 설명하며 "과거 형사기동대 직원들은 무도 단증만 있으면, 운전요원들은 대형면허증만 있으면 (경찰에) 들어왔다"고 발언했다.
강 내정자의 발언이 알려지자 하위직 경찰관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봇물터지듯 나왔다. 급기야 하위직 경찰관들 모임인 '무궁화클럽' 소속 회원은 강 내정자가 경찰관들의 인권을 무시했다며 같은 해 5월 19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부하직원들이 상관인 경찰수뇌부를 고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이 일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강 내정자의 해명으로 무궁화클럽 회원들이 진정을 철회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해 3월 해양경찰청장으로 조직을 옮긴 뒤 1년 만에 복귀하는 강 내정자가 안팎의 불신을 해소하고 조직을 잘 추스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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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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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더 이상 짭새 아닙니다!" 이랬던 신임 청장 내정자, 뭔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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