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강사 권김현영씨
박상규
-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에 휘말렸고, 사건을 은폐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솔직히 노동계의 성폭력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라 놀라거나 특별히 실망하지 않았다. 노동계 내의 성 불평등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뀐 게 하나도 없을까? 여전히 조직보위론에 음모론에 가해자 동정론과 피해자 음해까지… 돌아가는 논리가 똑같다.
성폭력 문제는 성적 스캔들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다. 여성을 동료로서 인정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민주노총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동네도 별 볼일 없이 똑같은 곳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안 된다. 적어도 여기(진보진영)에서는 이런 문제(성폭력) 해결을 위해 논쟁적이면서도 공통의 윤리를 갖기 위한 장이 만들어졌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성폭력 문제는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문제는 그걸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민주노총의 강한 '남성성'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또 터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은 대단위 사업장, 정규직, 남성, 그것도 '가장' 중심의 조직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결정권이나 투쟁방식도 그들이 독점했다. 그들만의 세상을 너무 오랫동안 만들어 왔는데, 깊은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남성중심성,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 것이다."
- 민주노총과 여성계는 그동안 소통을 많이 해왔나. "소통이 있었다. 하지만 많이 실망하고 여성들이 나왔다. 과거 울산 현대자동차 식당 아줌마들의 해고와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이 만들어졌을 때, 일부 남성 중심의 진보진영이 인권영화제에서 상영 못하게 한 일도 있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 있을 때 종종 가서 이야기 듣고 해결하려 했지만, 그 문제가 그들에게는 골치 아프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됐다. 계속 문제제기를 하면 완전히 '마녀'가 된다.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해결했고, 어떤 방식을 통해 해결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 간의 문제로 치부되고, 그런 방식으로 해결이 안 되면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정리되곤 했다. 이런 게 무슨 진보인가."
- 사실 남성 중심의 민주노총 힘은 최근 약해졌지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됐던 기륭전자, 이랜드, 그리고 KTX 등의 투쟁은 많은 지지와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기륭이나 이랜드에서 싸우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들이 남성들에게 익숙한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이다'라는 식의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무장돼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분들은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사회에 던졌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싸워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상도 해보고, 국회도 찾아가 보고, 시민들도 만나고, 파업과 집회도 조직하는 등 공공 영역에서 이야기하는 걸 배워나가고 있다. 이분들은 이전에는 단지 아줌마,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이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배우면서 서로 연대의 즐거움을 느꼈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희열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민주노총은 힘과 조직이 있다. 그래서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무너지면 지금의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총파업을 하자는 식으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데, 여성들은 그런 힘을 한 번도 가져보지도 못했고, 경험도 못했다. 여성들은 이제 다른 형태의 힘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