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한국 증시코스피지수가 3년4개월 만에 1,000선이 붕괴된 938.75로 마감된 지난해 11월 24일의 모습.
연합뉴스
"보고 온 거 있나요? 적립식 주식형 펀드로 하세요. 비과세 혜택에 소득공제까지 되니까. 원금 보전은 안 돼요. 해외펀드는 권유할 만한 게 없으니 국내 펀드로 하세요."5일 오전 서울 상암동의 한 은행 창구에서 "펀드에 가입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창구 직원인 김소현(가명) 대리가 내놓은 대답이다. 기자가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어떤 게 괜찮으냐?"고 묻자 "주식형 펀드는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러한 김 대리의 설명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아래 자통법)'의 취지와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 4일부터 시행된 이 법으로 금융회사는 고객이 펀드에 가입하기 전, 고객이 작성한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통해 고객의 투자성향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펀드를 추천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이 은행의 창구직원은 펀드를 먼저 가입시킨 후, 그에 맞게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뿐 아니라, 창구 직원은 펀드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날 상담에서 기자는 '투자자 보호'라는 자통법 취지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펀드 정보 알려달라는 요청에... "인터넷 보세요" 이날 펀드 상담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처음에는 "펀드 가입 전, 기초 정보를 얻으러 왔다"고 밝혔다. 기자는 창구 직원 최진아(가명)씨에게 지금 펀드에 가입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최씨는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 지금 주가가 높은 시점도 아니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나라가 부도나는 것"이라며 "마이너스 성장을 해도 주가는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3년 이상 장기투자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1~2년 안에 결혼할 것 아니면 (월) 10~20만원 투자해도 괜찮다"며 "저 같은 경우는 주가가 떨어지던 작년 중반쯤 가입한 펀드를 얼마 전에 환매했는데, 손해가 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더니 몇 가지 펀드를 추천했다.
기자가 펀드 수익률에 대해 묻자 "상황이 좋을 때는 다 비슷비슷하다, 1~2%밖에 차이 안 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자 최씨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새 펀드 가입하시는 분이 많지 않아, 창구에 자료가 별로 없다. 인터넷에 보면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으니, 은행 홈페이지를 찾으면 된다. 요즘 젊은 분들은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온다."창구 직원 "월 10만원이면 주가 떨어져도 괜찮다"30분 뒤, 다시 이 은행을 찾아 펀드 가입 상담을 받았다. 이번에는 김소현 대리가 기자를 맞았다. 그는 앞서 소개한대로 상담 시작과 함께 몇 개의 주식형 펀드를 추천하며 "주식형 펀드는 모두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각 펀드의 장단기 수익률·설정액을 비롯해, 투자전략·투자 대상·위험도·수수료·잦은 펀드매니저 교체 여부 등 펀드를 고를 때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대리는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A펀드에 대해선 "운영을 잘해서 여러 회사에서 추천된다"고 했고, B펀드의 경우엔 "이 펀드는 유명하니 설명이 필요 없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갑자기 생소한 펀드를 선택하는 것보다, 꾸준히 판매되는 펀드가 무난하다"고 말했다. 또한 "솔직히 월 10만원 정도 투자하면 주가가 떨어져도 크게 타격받지 않는다"며 "3년 후에는 뭔가 바뀌어져 있을 테니 3년 계약하면 괜찮다"고 덧붙였다.
김 대리는 "고객들의 소중한 자산이 마이너스되면 저도 기분이 안 좋다"면서도 자통법 시행 후 투자성향 파악을 위해 가입 전에 작성해야 하는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기자에게 내놓지 않았다.
상품 성향에 꿰맞춘 고객 투자성향 조사... 투자자 보호는 '빈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