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했다, 내가 다 망쳤다"
'70% 지지율' 대통령은 왜 머리를 숙였나

[해외리포트] 오바마의 '석고대죄'와 이명박의 '침묵'

등록 2009.02.05 08:35수정 2009.02.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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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3일(현지시각), 탈세논란에 휩싸인 톰 대슐을 보건장관 지명에서 철회했다. 같은 날 오전, 백악관 최고업무담당관(CPO: Chief Performance Officer)으로 내정될 예정이었던 낸시 킬리퍼 역시 세금 체납 문제로 자진 사퇴를 발표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지 2주여 만에 세금 체납으로 인한 문제가 팀 가이스너 현 재무부 장관을 포함해서 벌써 3번이나 일어난 것이다.

민주당 전 상원 대표이기도 했던 대슐의 사퇴를 두고 백악관이 발표한 성명서를 보자. 오바마는 "그의 결정을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톰은 실수를 했고, 이에 대해 그는 공개적으로 인정을 했다, 그도 나도 이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톰 대슐 미국 보건장관 내정자(중앙)가 2008년 12월 11일 시카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우)가 경청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자료사진. 대슐은 2009년 2월 3일 탈세에 대한 비판을 둘러싸고 보건장관 지명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톰 대슐 미국 보건장관 내정자(중앙)가 2008년 12월 11일 시카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우)가 경청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자료사진. 대슐은 2009년 2월 3일 탈세에 대한 비판을 둘러싸고 보건장관 지명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EPA=연합뉴스

'체납 장관' 톰 대슐의 사퇴와 오바마의 '대응'

이보다 앞서 발표된 사퇴 성명서에서 대슐은 보건부를 이끌 책임자로 자신을 선택해 준 오바마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우리 제도(미국의 의료제도)에 내재된 문제를 지난 30년간 겪어오면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임무(보건부 장관의)가 의회와 미국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distraction'(문제의 초점을 다른 데로 전환시키는 행위) 없이 일 할 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바로 지금, 나는 그러한 지도자가 되지 못할 것이며, 그러한 방해물(distraction을 의역했음)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새 행정부의 보건부 장관 적임자였던 '대슐 카드'를 버리게 되었다는 것은 오바마에게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대슐이 누구인가.

26년간의 의회 생활 중, 18년을 사우스다코다의 상원으로, 그 중 10년 동안을 민주당 상원 대표로 역임했었다. <Critical: What We Can do About the Health-Care Crisis>(의료 서비스 위기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라는 저서가 있을 정도로 그는 미국의 의료 제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의료 개혁을 둘러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역학관계를 그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다.


15년 전 힐러리 클린턴이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유니버설 헬스 케어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녀와 클린턴 행정부가 의료 시스템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을 풀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1일, 오바마는 미국 보건부의 수장으로 또, 백악관 내 새로 마련될 의료 개혁부의 책임자로 대슐을 선택했다. 미국의 의료 제도 개혁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경기 부양책의 기본 축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 비용은 가히 살인적어서 의료 수가를 낮추지 않은 채 일반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펴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슐은 또한 의료 개혁 분야에서의 탁월한 능력뿐 아니라 오바마와도 매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가 초선 상원으로 워싱턴에 왔을 때부터 대슐은 그의 정치적 '맨투어'의 역할을 해주었고, 민주당 대통령 경선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그의 선거캠프 공동의장을 맡으면서 오바마에 대한 전폭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슐 카드'를 져버리는 일이 오바마에게는 매우 큰 '손실'이며 '서운한 일'일 수밖에 없다. 오바마는 대슐 사퇴 수용 하루 전까지만 해도 "대슐을 지지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Absolutely!(물론이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결국 톰 대슐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당일 저녁, 미국 국민 전체를 상대로 "내가 다 망쳤다, 내가 실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며 '석고대죄'를 했다.

대통령의 석고대죄 "내가 다 망쳤다, 실수했다"

원래 3일 저녁에 예정되어 있었던 5개 주요 방송국과의 대통령 인터뷰는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인 8, 9천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미국 국민들과 공화당 의원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방송국의 선택도 <NBC> <CBS> <CNN> <ABC> <Fox News> 등 진보에서 중도, 보수 성향까지 총 망라함으로써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민주당만의 주도가 아닌 전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자리에서 오바마가 따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부분은 바로 현재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인사 잡음'에 대한 정중하고도 솔직한 사과였다. 특히 이날 하루 동안만 2명의 내정자가 자진 사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진지한 사과가 오바마에게는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했다.

오바마는 <ABC>의 찰리 깁슨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이번 일은 당혹스런 일이다. 내가 책임을 질 것이다. 취임사에서 '책임감의 시대'를 얘기한 사람이 바로 나다. 워싱턴의 사람들과 세금을 내는 일반 사람들 사이에 두 개의 다른 룰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번 일은 이 행정부에게 당혹스런 일이다."

<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에게는 개인의 책임감에 대한 부분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했다.

"내가 지금 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내가 망쳐 버렸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책임감의 시대'의 한 모습이다. 결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 실토할 것이고,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단도리할 것이다."

<CBS>의 케이티 쿠릭에게 전한 말은 더 결정적이다.

"여전히 대슐이 의료 개혁에 있어 적임자라고 생각하지만 이 행정부가 두 개의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다. 유명한 사람들과 매일 세금을 내고 사는 일반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다. 난 내가 일을 엉망진창으로 잘못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톰(대슐)에 대해서는 의도하지 않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일반 국민들에게 그른 신호를 보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결국 내 잘못이다."

오바마의 반성과 설명은 <CNN>과 <Fox News>에서도 반복됐다.

 오바마에게서 온 이메일. 경기 부양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보다 미국 국민들 모두가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과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주변의 이웃과 친지들에게 이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독려하고 있다. 또한 경기 부양책에 대해 질문이 있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오바마에게서 온 이메일. 경기 부양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보다 미국 국민들 모두가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과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주변의 이웃과 친지들에게 이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독려하고 있다. 또한 경기 부양책에 대해 질문이 있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이유경

'70% 지지율' 오마바와 '바닥지지율' 이명박의 '거리'

오바마가 이렇게 방송마다 국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진행하고자 하는 경기 부양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다.

사실, 현재 미국 의회의 지형을 볼 때, 오바마는 공화당의 지지 없이도 큰 무리 없이 행정부 의도의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미 지난 1월 28일, 단 한 표의 공화당 하원의 찬성이 없는 상태에서, (또 민주당 하원 11명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행정부의 8190억 원짜리 경기 부양안이 통과된 바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원하는 것은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 성향 국민들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지난 28일 하원 표결 이전에도 오바마는 의회로 직접 나가 공화당 하원들과 접견을 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백악관으로 양당의 양원 지도자들을 모두 초대해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비록 공화당 하원의 표를 하나도 얻지 못했지만, 서로 좀 더 친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이후에도 오바마의 공화당 의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3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오바마는 2월 2일 저녁 민주당의 양원 대표를 백악관으로 불러, 민주-공화 양당의 공조를 이끌어 낼 수 없는 부분들은 과감히 경기 부양안의 내용으로부터 빼버리라고 일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의 업무 수행에 매우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2월 2일 발표된 <USA Today/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의 대통령 승인율은 70%에 육박한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조사됐던 과거 대통령들의 승인율과 비교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의 72% 다음으로 높은 기록이다.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고 양원도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오바마가 이처럼 공화당 의원들에게 또 미국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1조 달러에 달하는 혈세가 들어가는 경기 부양책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의회에서 통과된 7천억불 경기 부양책(TARP: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과 현재 논의되고 있는 8, 9천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 이외에도 제3, 제4의 경기 부양책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지지가 없다면, 그 어떤 '만병통치약'도 현재의 경제 위기를 벗어나게 할 수 없다는 것.

용산 재개발 지역 화재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과, 또 참사를 부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각계의 사퇴요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오바마 #이명박 #경기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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