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기만의 'SBS 탓.탓.탓 토론회'

원탁(圓卓)의 기만술(欺瞞術)

등록 2009.02.01 13:13수정 2009.02.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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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의 원탁을 떠난 사람

 

원탁(圓卓)은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의 동등한 지위 보장과 함께 상호 신뢰와 협조 정신을 상징한다. 원탁 회담이나 원탁 토론 같은 제목이 붙은 회담이나 토론은 참석자 모두의 동등한 발언권과 반론권을 허용하는 것이 원탁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일일 것이다.

 

아서왕(king Arthur)의 전설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카멜롯 성의 원탁은 중세 기사도를 상징하는 정신으로 끝없이 미화 되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원탁은 오늘날의 원탁 회담과 같이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탁자는 둥글고 참석자가 같은 모양의 의자에 앉았지만 왕과 기사들의 발언권의 무게는 각각 달랐으며 중대한 결정은 언제나 아서의 몫이었다.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아서에게 충성을 맹서한 사람으로만 한정되었을 뿐, 아서의 권위에 도전한 말라건트(Malagant) 같은 사람은 가차 없이 추방되었다.

 

아서의 이야기는 단지 전설에 불과하지만 끊임없는 미화 과정을 거친 전설 속에서조차 절대 권력자가 주도하는 원탁회담은 고도의 정치적 과시 목적을 가진 위선적 평등에 불과했었던 것이다.

 

SBS 탓.탓.탓 토론회

 

패널 선정의 투명성과 출연자의 동등한 발언과 반론권 보장이 공정한 토론의 ABC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가장 기초적인 구색조차 갖추지 않은 채 둥근 탁자의 모양만 강조한 대한민국 방송사상 가장 우스꽝스런 원탁토론회가 되고 말았다.

 

그 자리에 함께한 패널들을 어떻게 선정했는지 설명조차 하지 않은 점은 그냥 넘어가자. 적어도 둥근 탁자에 앉아 토론한다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일방적인 기자회견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시간이 없다는 채근에 밀린 패널의 짧은 질문에 대통령이 장황하게 동문서답을 늘어놓아도 어찌된 일인지 진행자는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나마의 답변에도 국민의 갑갑한 가슴을 속시원하게 뚫어 줄 의미 있는 대답이나 해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된 것은 북한 탓이며, 경제가 어려운 것은 세계 경제의 위기 탓이고, 환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정치공세 탓이며, 용산 참사는 과격한 시위 문화 탓 등,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분야는 한 가지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남 탓으로만 일관한 탓,탓,탓 토론회였다.

 

이명박 무오설(無謬說)-MB를 위한 변명

 

그래도 이번, 토론을 가장한 퍼포먼스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은 129에 신고하면 즉각 공무원이 뛰쳐나가 긴급구호에 나선다고 한다. 언제 이런 준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거리로 나앉은 사람을 위해서 빈 임대아파트도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올해는 어렵지만 내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서러운 서민들 지금은 끼니꺼리가 없어도 내년에는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29에 신고해도 공무원이 즉각 구호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대통령을 위해 변론하자면 그건 대통령 탓이 아니라 동작 굼뜬 공무원들 탓이다. 거리로 나앉은 사람이 빈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당사자가 임대 보증금이 없어서이지 대통령 탓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더 곤두박질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책임은 없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탓일 거고 국민과 야당과 세계와 시장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이명박 대통령을 믿어주지 못한 탓일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 국민은 스스로를 무오(無謬; 어떤 경우에도 실수하거나 잘못이 없다는 뜻)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01 13:1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원탁토론회 #SBS #국민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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