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일꾼은 녹슨 황혼기에 빠져있었다.
이장연
초대 경운기는 20년 넘게 밭과 논, 집을 오가며 고향을 지키고 땅을 일구며 살아온 가족과 마을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초대 경운기에 탈이나 고장이 잦자 2대 경운기를 샀는데, 그것도 아랫밭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초대 경운기는 밭이나 논을 갈 때 이용하고 2대 경운기는 이것저것을 운반할 때 자주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계양산 징매이고개와 마을, 논과 밭, 저희 옛집을 관통하는 8차선 도로가 나면서부터 경운기를 끌고 다닐 수가 없어졌습니다. 쌩쌩 내달리는 자동차 행렬과는 다르게 느릿느릿한 경운기의 움직임은 도로 위에서 위태롭고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도로 사정 또한 농사꾼과 경운기 운행을 위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아 경운기를 이용해서는 집과 밭을 오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껏해야 윗밭과 아랫밭을 오갈 뿐, 그 독특한 털털거림으로 집과 마을로 진입할 생각을 접었습니다. 농부에게 단순한 농기계가 아닌 경운기가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에는 경운기를 참 많이도 타고 다녔습니다. 비포장길을 '덜컹덜컹' 내달리면 엉덩이가 아팠지만,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고 그 뒤 짐칸에 할머니, 어머니, 동생과 제가 타고는 논으로 밭으로 집으로 수없이 오갔습니다. 그 경운기 위에 꿈도 희망도 웃음도 슬픔도 고된 일상도 모두 싣고서.
그 훈훈한 추억들과 함께해 온 경운기 두 대는 겨울들녘에서 외롭게 황혼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아, 참 쌀직불금 부정수령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제 아예 물 건너 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