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LA 실직 가장, 처와 자녀 5명 살해후 자살

미국 경제 위기 여파, 더 이상 숫자 상의 문제가 아니다

등록 2009.01.29 14:30수정 2009.01.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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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미국에서 하루 동안만 7만1400여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중장비 업체 캐터필라가 2만개, 무선 전화회사인 스프린트-넥스텔이 8천개, 가정용 건설, 인테리어 자재를 파는 홈디포가 7천개, 그리고 합병 예정의 제약회사 파이저와 와이어스가 8천개, 제너럴 모터스가 2천여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일제히 발표했다.

 

여기에 오늘 28일 여객기 및 군용 비행기 제조업체인 보잉도 올 한해 1만여명을 해고할 것이라 밝혀, 단 3일 동안의 유명 기업 몇 개의 발표만으로도 8만여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질 전망이다.

 

그리고 이같은 해고의 쓰나미 속에서 살해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가족이 있어 미 전역에 큰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부부 모두가 일자리를 잃게 되자, 그 막막함을 이기지 못한 40살의 얼빈 안토니오 루포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 또 다른 쌍둥이를 포함한 딸 3명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한 것이다. 이 비극은 27일 LA의 윌밍턴이라는 중산층 동네에서 벌어졌다. 

 

<LA 타임스>에 따르면, 루포는 26일 저녁 무렵 2층 방을 돌아다니며 아내와 5명의 아이들을 권총으로 살해한 후, 다음 날 오전 지역의 한 방송국인 KABC-TV에 자신을 해고한 직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팩스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한 911에도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살해를 당했고, 자신은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말했다고도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구급요원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루포는 자살한 상태였고, 총은 그의 옆에 놓여져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방송국으로 보낸 2장짜리 팩스에서 루포는 자신과 아내를 해고한 병원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했다. 팩스 내용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양육 보조를 받기 위해 고용 상태를 속였다는 이유로 병원의 내사를 받았으며, 이를 부당하게 생각한 루포 부부는 병원 인사과에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병원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지만, 병원의 한 행정관으로부터 뭣하러 병원에 왔냐면서, "당신들은 그 머리를 날려버렸어야만 해!"라는 말을 들었고, 이틀 후에 해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해고 후의 끔찍스런 시련 속에서 루포의 아내는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느꼈고, 부부가 죽고 남게 될 아이들을 "왜 남의 손에 맡기냐, 우린 직업이 없고, 8살 미만의 5명의 아이들이 갈 곳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라고 루포는 팩스에 적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 그는, "아, 하나님 아버지, 과부의 아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단 말입니까?"라고 적었다.

 

LA 카운티 검시관에 의하면, 루포의 아내 애나는 38살이고, 아이들은 각각 8살짜리 딸, 5살짜리 여아 쌍둥이, 2살짜리 남아 쌍둥이로 모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포 부부가 의료 기술자로 일했던 웨스트 로스 엔젤레스 메디컬 센터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해고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이 부부가 약 2주 전 이 병원으로부터 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매우 슬프지만, 그에게 그의 생명이나 가족의 생명을 거두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만 했다.

 

해고될 무렵, 루포는 크레센트 하이츠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들을 보러 학교를 방문했고, 교장 선생님에게 곧 캔사스로 이주할 것이라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직원에 따르면,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등교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살해-자살로 추정하고 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CNN>은 사건현장이 LA 경찰이 경험했던 그 어떤 살해 현장보다도 끔찍했다며, 수사관 중 한 명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구토를 했다고 보도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루포의 83살 루포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며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루포는) 항상 직장에 있었어요. 일을 정말 많이 했고, 내가 말을 걸고 있을 때조차 일을 하곤 했었어요"라고 전했다.  

 

루포의 전 동료들은 <LA 타임스>에 그들 부부가 밝고 일 잘하는 직원이었으며, 자상한 부모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아내인 애나 루포는 항상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전해주었다.

 

루포는 자신의 <Facebook>에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남가주대학)을 졸업했다고 적고 있다.

 

이번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 경제적 곤란 때문인지는 그가 방송국에 보낸 팩스 내용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부부의 동반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측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의 한 주민은 현재 루포의 집 같이 비교적 큰 신형의 집들은 많은 경우 은행 차압에 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그의 집은 약 6년 정도 되었고, 작년 2층으로 증축을 하면서 또한 뒷뜰에 조경을 위한 공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집은 주변의 단층짜리 집들에 비해 훨씬 크다고 한다.

 

사건 현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던 LA 시장은 최근 몇 달 간 이와 같은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은 친구나 주변의 조언을 듣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LA지역에서는 지난 12월 14일, 산타 클로즈 복장의 한 사내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들어와 전 부인과 그녀의 친척 여덟 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또한 10월에는 실직을 당한 펀드 매니저가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 끝에 자신의 아내와 3명의 자녀, 장모, 그리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AP>는 경찰의 말을 빌어 가족에 의한 살해, 자살이 2009년에만 무려 5건으로, 경제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려기보다는 극단적인 방법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2009.01.29 14:30ⓒ 2009 OhmyNews
#미국 경제 위기 #일가족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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