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한국적 곡선미의 극치

'화가와 달항아리'전 갤러리현대강남에서 2월 10일까지

등록 2009.01.29 16:16수정 2009.01.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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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현대입구에 설치된 정광호의 구리선으로 만든 '달항아리'와 뒤에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각이 보인다
갤러리현대입구에 설치된 정광호의 구리선으로 만든 '달항아리'와 뒤에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각이 보인다김형순

갤러리현대강남(대표 도형태)에서 신년 첫 전시회로 '화가와 달항아리전'이 2월 10일까지 열린다. 부제는 '화가들이 사랑한 달항아리'다. 이번 전에는 김환기, 도상봉, 구본창, 강익중, 박영숙 등 근현대화가, 도예가, 조각가, 사진가 등 16명의 작품 80점을 선보인다.

오랜 세월 만들어진 다양한 장르의 달항아리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관객입장에서는 참 즐거운 일이다. 잠시 삶의 시름을 내려놓고 고향의 달처럼 정답고 포근한 항아리를 보면서 삶의 여유와 활력을 되찾으면 어떨까싶다.


조선백자는 고려청자에 팝아트 옷을 입힌 격 

 강민수 I '달항아리' 53×54cm 2008. 도상봉 I '정물(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67(오른쪽)
강민수 I '달항아리' 53×54cm 2008. 도상봉 I '정물(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67(오른쪽)김형순

도예가 강민수(1971~)의 달항아리는 안온하고 둥근 맛이 좋고, 음영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살린 도상봉(1902~1977)의 달항아리는 그 투박한 질감이 좋다. 엉뚱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조선백자는 고려청자에 팝아트 옷을 입힌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조선백자는 고려시대인 12세기 순(純)청자에서 상감청자로 옮겨가며 그 절정을 꽃 피우다가 16세기에는 분청자(분청사기)로 분화된다. 그리고 17세기에는 명나라에서 유래한 청화백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18세기에 와서 하얀 달빛을 닮은 백자의 전성시대가 온다. 

조선백자가 이런 예술품이 되는 데는 무려 600년 이상의 긴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렇기에 그 흰색은 그냥 흰색이 아니다. 삼원색이 합쳐야 흰색이 되듯 이 세상의 모든 색이 다 합쳐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자의 흰색은 '모든 색의 통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도자기는 생활 속에 멋과 여유를 주다


 도자기나 책이나 과일그릇이나 수석을 올려놓고 즐겨 보는 4층사방탁자. 그 중 도자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도자기나 책이나 과일그릇이나 수석을 올려놓고 즐겨 보는 4층사방탁자. 그 중 도자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김형순

모든 물체에는 색과 형태가 있다. 달항아리는 흰색에 보름달 모양이다. 이 두 가지 조형요소는 오묘하다싶을 정도로 궁합이 잘 맞는다. 그렇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도자기를 빚으려면 잘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마저도 버려야 했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부자가 되지만 '4층사방탁자'에 무화과 담긴 그릇과 같이 놓으니 더 보기 좋다.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멋과 여유를 찾게 해 준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사람들 마음을 다독이는데 더없이 좋은 처방이 되리라. 


우주를 품은 여인인가 하늘을 향한 기원인가   

 정광호 I '달항아리(The Pot 020776)' 구리선 76×76×77cm 2002. 김덕용 I '달항아리' 목판에 혼합재료 119×119cm 2007(뒤)
정광호 I '달항아리(The Pot 020776)' 구리선 76×76×77cm 2002. 김덕용 I '달항아리' 목판에 혼합재료 119×119cm 2007(뒤)김형순

정광호(1959~)는 '비조각적인 조각'이라는 개념을 두고 작업을 하는 조각가다. 이건 구리선으로 만든 도자기다. 달항아리가 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여인 같아 매혹적이다. 조선백자에 이런 신선한 감각을 접목시켜 참신하게 보인다.

김덕용(1961~)은 달항아리 사랑을 그의 절절한 시(우주를 품은 여인의 자태일까/ 하늘 우러른 기원의 숨결일까/ 깊은 밤 달을 품다)로 고백한다. 목판에 혼합재료를 써서 그런지 그의 항아리는 두툼한 질감에 중후한 맛이 나 의젓하고 듬직하다. 

어머니의 품 같은 달항아리, 한국미의 원류 

 강익중 I '달항아리'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polymer) 177×177cm 2008. 구본창 I '달항아리(Vessel_01)' C-프린트 154×123cm 2006(아래 오른쪽). 권대섭 I '달항아리'
강익중 I '달항아리'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polymer) 177×177cm 2008. 구본창 I '달항아리(Vessel_01)' C-프린트 154×123cm 2006(아래 오른쪽). 권대섭 I '달항아리'김형순

한국미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달항아리는 다양한 조형으로 구현되어 어머니의 품 같은 푸근한 맛을 내고 있지만 그 공통점은 역시 위에서 보듯이 갸우뚱한 비정형적인 선에 있다.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로 만든 강익중(1960~)의 달항아리는 2008년 근작으로 그 질감의 촉촉함이 사람들 손에 닿을 것 같다. 그는 항아리를 "어머니의 어머니요, 형제요, 어릴 적 동네에서 본 하늘이요,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담긴 것 5천년 이야기"라고 고백한다.

사진작가 구본창(1953~)은 달항아리 작업을 하면서 어떤 깨달음이 온 모양이다. 그 과정을 "외형보단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파고들고자했다"고 적어두었다. 권대섭(1954~)의 도자기는 또한 그 선이 오붓하고 그 색은 신기하고 고요하다. 

김환기 화백의 유별난 달항아리 사랑
 
 김환기 I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캔버스에 유채 61×41cm 1956. '항아리와 매화가지' 캔버스에 유채 40×58cm 1958
김환기 I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캔버스에 유채 61×41cm 1956. '항아리와 매화가지' 캔버스에 유채 40×58cm 1958김형순

김환기 화백은 그림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빼어나다. 그의 수필집을 읽다보면 달항아리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그는 50년대 후반기 한국전쟁의 악몽을 씻으려 했는지 귀신에 홀린 듯 미친 듯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를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린다. 

게다가 상반신과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손에 매화향이 나는 항아리가 들려있어 은은한 에로티시즘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도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속으로 스며들어 더 매력적이다.

조선백자, 최대이윤 내는 우리미술의 종자돈

 갤러리에서 대여한 조선시대의 보물급 달항아리 중 하나로 중후함과 후덕함이 넘친다
갤러리에서 대여한 조선시대의 보물급 달항아리 중 하나로 중후함과 후덕함이 넘친다김형순

위 도자기는 갤러리 측에 의하면 개인이 소장한 보물급 조선백자로 이번 전을 위해 대여한 것이란다. 청백색의 풍만한 허리선이 이루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한국적 곡선미의 극치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진 도자기를 이윤을 가장 많이 내는 우리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이자 종자돈으로 보면 어떨까. 이런 심미안이라면 우리가 평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도 그 모양과 색채는 다 달라  

 고영훈 I '생명' 드로잉 162×128cm 2002(왼쪽 작품). 그 외에도 박영숙, 양구, 박부원, 강신봉 등의 도자기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고영훈 I '생명' 드로잉 162×128cm 2002(왼쪽 작품). 그 외에도 박영숙, 양구, 박부원, 강신봉 등의 도자기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김형순

여기 달항아리들을 보면 다 비슷해 보이나 실은 다르다. 왜냐하면 작업할 때 흙의 질량이나 물기, 햇빛과 바람 등 자연조건 그리고 작가의 심경까지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왼쪽에 보이는 고영훈(1952~)의 두 작품은 드로잉인데도 진짜 도자기처럼 보인다.

2층 전시장에 전시된 여러 달항아리들을 보니 복덩어리 같은 달덩어리들을 여기저기서 두둥실 춤을 추는 듯하다. 우리네 삶에도 복과 행운이 그냥 굴러들어올 것 같다.

도자기의 세계화를 향한 끝없는 도전

 이수경 I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파편 에폭시 24K금 120×52×10cm 2007.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번역된 도자기' 2006(위). 이번 전에는 그의 작품이 출품되지는 않았다
이수경 I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파편 에폭시 24K금 120×52×10cm 2007.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번역된 도자기' 2006(위). 이번 전에는 그의 작품이 출품되지는 않았다 김형순 이수경

끝으로 여기서 도자기의 세계화를 생각해보자. 이런 도전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몸을 던져 맹렬하게 작업하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이수경(1963~)이다.

그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지만 2001년 알비솔라 국제도자기비엔날레에 갔다가 거기 도예가들이 백자사진만을 보고 조선자기를 만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귀국 후 이천 등지에서 유명도공들이 깨버린 도자기를 모아붙이는 콜라주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세계미술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2007년 '스페인아르코아트페어'에서 한국작품 중 배병우의 '소나무(4만2천유로)'에 이어 2번째로 높은 3만8천유로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작년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展'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긴 누가 깨진 도자기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새로운 것은 언제나 기존의 틀을 깨야 가능하다. 그는 이렇게 높은 벽을 뛰어넘었다. 어쨌든 그의 이런 도발은 주변작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고 영감의 샘이 되리라.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지하철 3호선 압구정동역 2번출구
2월 1일(일요일) 오후 2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달항아리 강연이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기간 중 일요일점심 때는 나물과 오곡밥도 맛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갤러리현대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지하철 3호선 압구정동역 2번출구
2월 1일(일요일) 오후 2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달항아리 강연이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기간 중 일요일점심 때는 나물과 오곡밥도 맛볼 수 있다.
#달항아리 #김환기 #구본창 #강익중 #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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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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