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철거민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원인규명 등을 위해 21일 오후 속개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게 전철연 시위의 특징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남소연
국회의원이라는 분들이 쏟아낸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이틀 전 출근길에서 2009년 1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이 참사를 내가 왜 그렇게 짧은 시간에 현실로 받아들였는지 그 이유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그렇지, 내가 이런 나라에 살고 있지.' 그들이 뱉어낸 말에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엿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도심테러'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의원은 한나라당 '용산 철거 참사 진상조사단' 단장이며, 유족들의 오열이 잦아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의적 방화' 운운한 의원은 야당의원이 자신을 부를 때 이름만 불렀다고 시비를 벌였다고 한다. 거 참,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판이다.
그나마 서울시에서는 조합 중심의 현행 재개발 사업의 폐해를 인정하고 철거민 생활안정과 법질서 유지를 모두 고려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지극히 밋밋하고 사무적인 입장표명이지만 맞는 말이다.
분명 서울시는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많은 서민들을 보금자리에서 내쫓고 있는지, 원주민 정착률이 얼마나 낮은지, 재개발사업을 통해 투기세력과 건설사들이 어떻게 배를 불렸는지, 공권력이 철거민들에게는 엄격하고 용역깡패들에게는 얼마나 관대했는지….
그렇다면 서울시가 알고 서울시민이 알고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이런 상식을 한나라당 의원 나리들만 모른다는 말인가. 빈민운동의 대모를 비례대표 1번으로 영입한 정당이 설마 이런 상식적인 일을 모를까.
폭력은 그들의 근엄한 입에서 시작된다현실의 허점은 많지만 허점은 점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70년대부터 근 4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도시재개발 현장의 이런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건 누구의 책임인가. 서민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거듭된 배신과 좌절에 누구를 믿고 어떻게 내일을 기다리란 말인가.
겨울에는 철거를 하지 않는다는 오랜 관행도 결국은 이런 현실에서 나온 타협책이었을 것이다. 뿐인가. 철거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업체가 제대로 처벌된 게 몇 건이나 있나. 뉴타운 계획도 없는데 선거 승리를 위해 거짓말을 한 정치인들이 처벌되는 거 봤나.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일수를 올려주지 않아 일용직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타지 못한 일은 또 한 두 건인가.
의원나리들이 그렇게 들먹이는 법에는 이렇게 허점이 많다. 뿐인가 서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을 아예 만들지도 않은 책임 방기는 어디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소통이 단절되고 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사회적 약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단행동에 의지한다.
경험이 보여주듯 대개의 경우 이런 집단행동은 작은 폭력에 그친다. 하지만 소통을 내팽개친 권력은 거대한 폭력으로 작은 폭력을 집어삼켜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 무식이든 무관심이든 의도적 무시든 국민 대다수가 아는 현실을 무시하고 약자들에게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 폭력은 바로 그들의 근엄한 입에서 시작된다.
용산참사 보며 지난해 6월 촛불을 떠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