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씨가 21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자택부근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용산 재개발 철거민 참사 사건과 관련해서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권우성
조 작가는 '난쏘공' 이후 다시는 보지 않기를 소망했던 '야만적 폭력'을 어제 다시 목격한 후 가슴이 너무 떨려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잠을 청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2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조 작가는 "안타까울 뿐"이라며 가슴을 쳤다.
"30년 전 '난쏘공'을 쓸 때 미래에는 이런 슬픔, 불공평, 이런 분배의 어리석음이 없기를 소망했어. 말하자면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워 놓은 '주의' 푯말인 셈이야.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뜻이었는데…, 21세기의 어느 날에 더 끔직한 일이 생겨버렸어." 그도 그럴 게 소설 속 난장이는 강제철거를 당한 후 삶의 희망을 빼앗긴 채 굴뚝 속에서 자살했고 2009년 용산의 세입자들은 옥상에서 철거에 저항하다 불에 타죽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조 작가는 자성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경찰과 군대의 폭력뿐 아니라 아이가 밤에 우는데 그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폭력"이라며 "우리가 어제 철거민에게 직접 물을 뿌리고 뜨거운 화염 속에서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범죄와 학살을 미리 막지 못한 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또 경찰의 야만적인 진압작전에 대해서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미국 허드슨 강에서는 비행기가 불시착했는데도 한 명도 안 죽고 모두 살아나왔는데 우리 경찰은 아무런 소방안전장비 없이 진압에 들어갔다"며 "21세기 경찰이 아니라 조선시대 외세에는 백전백패하면서 동족만 때려잡은 조선 관군과 같다, 명령대로 수행했을 뿐이라고 했던 5·18 민주항쟁 때의 미개 군인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경찰은 주권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인데 어제의 경찰들은 5·18때의 군인들처럼 자신들의 임무를 유기해버린 거야. 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죽인 거 아니야. 5·18의 아픈 경험이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고 그때의 정신을 희생자들과 함께 우리 사회가 땅 속에 묻어버린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가 (약자의) 고통의 문제를 다룰 때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겠지.""외세에는 백전백패, 동족만 때려잡은 조선시대 관군 같았던 경찰"이어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혀 선진국이 된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며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석기 서울청장의 형제나 친구가 희생자 중에 포함됐었다면 그들의 잠자리가 편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조 작가는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한국 사회의 천박성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을 했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가난뱅이'에게 고통을 넘겨주는 것. 경제를 위해서 희생을 치르도록 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지난해 '난쏘공' 30주년 기념식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지. 한국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딱 두 부류라고. 하나는 도둑이고 또 하나는 바보. 나는 지금도 이 말을 취소할 생각은 없어. 비정규직이 850만명이고 농민이 300만명이야. 직장이 불안하고 먹고살기 어려운 인구가 1150만이나 되는데 약자가 불행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