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딘 도착입구의 조형물
김준희
저녁 5시가 넘어서 작은 마을 지아딘에 도착했다. '지요아딘'인지 '지아딘'인지 정확히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오늘 어디서 잘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사막을 걸을 때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면 흔쾌히 나한테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었다.
그런데 도시로 들어가니까 그런 인심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물론 아무 조건없이 나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도 많기는 하다. 이 지아딘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길을 걸으면서 몇군데 식당에 들러보았지만 모두 재워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500미터를 가면 '바곤'이 있으니 그리 가보라고 한다. 열차 객차를 가리키는 말인데, 열차를 개조해서 식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곳도 영업을 하지 않는지 굳게 닫혀있을 뿐이다.
이것 참 난감하다. 이 마을에 내 몸 하나 누울 장소가 없단 말인가. 아무튼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길가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여기서 일하는 젊은 남자에게 재워달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좋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나는 짐을 한쪽에 놓고 마당에 있는 탁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재워주겠다고 말한 남자는 올해 28살의 쉬르조드다. 그는 어머니, 부인, 동생과 함께 이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형도 한명 있지만 모스크바에서 일하고 있단다.
나는 탁자에 앉아서 쉬르조드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었다. 마당 한쪽에서는 쉬르조드의 2살난 아들이 작은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뒹굴고 있다. 저러다가 고양이 발톱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작은 방에서 모기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나는 점점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의 매일 이렇게 공짜로 재워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 25일 동안 700km를 걸어왔다는 것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루하루 걷다보면 사마르칸드를 거쳐서 타쉬켄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쉬르조드는 나를 작은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나무로 만든 방문 한쪽이 박살나서 구멍이 뚫려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까 그 구멍으로 모기들이 계속 들어와서 내 귓가로 날아든다. 오늘은 이 모기들 때문에 고생좀 하게 생겼다. 잠들기 전에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텐데.
한국에서 도보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당시 모기하고 관련된 아무런 물건도 구하지 않았다. 바르는 모기약이나 모기향 하다못해 뿌리는 살충제 작은 거 하나만 가져왔더라도 좋았을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보았자 아무 소용없다. 하긴 내 인생이 후회의 연속 아니었던가.
나는 일단 실내에 들어온 모기들을 대충 때려잡고, 문에 뚫린 구멍은 점퍼를 이용해서 가로 막았다. 오늘 하루 고생한 허리에는 파스를 두장 붙이고 욱신거리는 발목에도 물파스를 발랐다. 그리고 공책과 볼펜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불빛 아래에서 오늘 하루의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 혼자하는 여행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거기에 차가운 맥주 한잔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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