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검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허위제보에 근거해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영아유기치사 사건 범인으로 몰아 구속했던 것으로 드러나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수원지검 전경.
김한영
국가인권위원회도 검찰 앞에선 작아지는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이하 인권위)는 지난 5일 경찰이 영아유기치사 사건의 용의자로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수사 등 '인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사건과 관련해 해당 경찰관을 징계하도록 소속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찰에 대한 징계권고와 달리 이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담당 검사에 대한 인권침해 진정 등에 대해서는 기각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져 인권·여성단체 등이 강한 유감표명과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에 따르면 수원남부경찰서는 2007년 5월 수원역 부근에서 발생한 영아사체유기 사건을 수사하던 중 한 노숙인에게 "노숙인 J양(당시 17세. 정신지체 2급)이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같은 달 31일 J양을 긴급 체포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강력팀 Y경찰은 J양이 처음 체포 당시부터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보호자나 변호인 동석 없이 1차 피의자 조사에서 J양이 혐의사실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그를 구속했다. 이 사건을 지휘한 이는 수원지검 형사부 소속 Y검사.
이어 J양을 구속한 검찰과 경찰은 같은 해 6월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망한 영아와 J양에 대한 유전자 감정을 의뢰해 이틀 후 인 6월 4일 사망한 영아와 J양이 모자관계가 아니라는 구두통보를 받았다.
검·경찰, 지체장애 J양 허위자백 받아 구속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J양을 석방하지 않았다. 담당 검사는 J양에 대해 "추가조사를 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10여일 동안 구치소에 더 구금한 뒤 6월 14일 석방했다.
그러자 다산인권센터·경기복지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삼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경찰과 검찰의 J양에 대한 체포-조사-구속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반발하면서 2007년 10월 10일 수사 경찰과 지휘 검사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시민단체들이 진정한 내용은 4가지. 시민단체들은 먼저 "경찰이 피해자를 영아유기치사 사건 용의자로 체포·수사하는 과정에서 미성년 여성 지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나 보호자 동석 없이 강압수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J양은 지능지수가 40(언어성 지능 45, 동작성 지능 40)으로 일반상식이나 어휘력이 매우 부족하고 사회적인 판단력도 극히 미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지휘 검사는 국과수로부터 피해자가 살해된 영아의 친모가 아니라는 구두통보를 받고도 '구두 통보만으로 석방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주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석방하면 도망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계속 강제 구금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연행할 당시 여성 경찰관 없이 4명의 남성 경찰관들이 연행했고, 피해자 체포사실을 보호자한테 늦게 통지했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 5일 시민단체들의 진정내용 가운데 경찰의 수사과정에 대해서만 인권침해를 인정해 해당 경찰관의 징계를 권고하고, 지휘 검사의 피해자 강제 구금 등 나머지 부분은 모두 기각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