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당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자리한 <문학당>은, 우리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때에 열려 있어서 느긋하게 책 구경을 하러 찾아오기 힘들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가끔가끔 책을 만나 둘러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최종규
(2) 졸업사진책을 잔뜩 품에 안고차가 뜸할 때 길을 건널까 하다가 그냥 지하도로 건너기로 합니다. 아기를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란 꽤 버거운 노릇이지만, 거침없이 씽씽 내달리는 차를 살피며 길을 건너기도 아슬아슬하기 때문입니다. 밤마실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팔에 힘이 쪽 빠졌으니, 그리 길지 않은 계단을 내려가도 땀이 솟습니다. 속으로 꿍얼꿍얼하다가 아기를 보면서 ‘녀석아, 얼른 자라서 엄마 아빠 늙으면 네가 이렇게 우리를 안거나 업고 다녀야지’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계단을 다 내려와 지하상가를 지나가려는데, 지하상가 들머리에 자리한 헌책방 <문학당>이 오늘은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여느 때에는, 또 여느 낮에는 문을 닫아 놓고 있더니, 꼭 오늘처럼 힘들고 아기를 안고 헉헉거릴 때에는 문이 열려 있습니다. 책 구경을 잠깐이나마 하고 싶어도 고단하니까 다음에 하자고 생각하게 되고, 힘겨우니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문학당> 아저씨들은 퇴근길 책손을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저녁나절 책방 문을 열어 놓고 술 한잔 기울이는 즐거움을 누리고픈 마음이 제법 있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어, 졸업앨범들 많네?” 저는 앞서서 슥 지나치고, 옆지기는 잠깐 둘러보면서 저를 불러세웁니다. “응?” 그냥 가지 뭘 또 본다고 그러느냐고 생각하면서도, ‘졸업앨범’이라는 말에 멈칫합니다. 인천 쪽 학교 졸업사진책이 있다면 다문 한두 권이라도 사들고 가도 괜찮을 테니까요.
마침 <문학당> 아저씨가 술잔을 놓고 나와서 “앨범들 많이 있으니까 한번 보고 가세요.” 하면서 부르고, 옆지기도 “아기는 내가 안고 들어갈 테니까, 당신은 보고 와요” 하고 잡아끕니다. “그럴까?”
아기를 옆지기한테 넘겨 줍니다. 흐르던 땀을 훔치고 쭈그리고 앉아서 요모조모 살핍니다. 서울 쪽 학교 졸업사진책이 꽤 섞였지만, 인천 쪽 학교 졸업사진책 또한 여럿 있습니다. 다른 곳 졸업사진책은 심심찮게 장만해 왔으나, 인천 학교 졸업사진책은 거의 장만하지 못해 왔기에, 통째로 가져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 이거 모두 하면 얼마예요?” “다 가져가면, 십만 원만 주시오.” “십만 원이요…….” 지갑에 남은 돈을 속으로 어림합니다. 십만 원이 나가면 이 한 주 살림돈은 바닥이 납니다. 뒤적뒤적 하면서 망설입니다. 그러다, 인천여자고등학교 1967년치 졸업사진책을 넘겨보고는, ‘좋아, 1967년치 인천여고 졸업사진책 하나를 찾아내었으니, 이 한 권 값이라고 치자’고 생각합니다. 모두 열다섯 권을 사들입니다.
집에 와서 걸레로 먼지와 더께를 닦으면서 살피니 곰팡이 핀 녀석도 두엇 있는데, 사이사이 졸업장과 상장이 너덧 장 나오기에, 이만하면 잘 산 셈이지 하면서 마음을 달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