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밤 새해 보신각 타종식이 열리는 서울 종각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 '아듀 2008 아듀 MB!'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피켓과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
권우성
KBS가 보신각 타종행사를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2008년 12월 31일 밤 11시 30분부터 KBS가 중계한 <특별생방송 가는해 오는해>는 예년의 그것과 확연히 달랐다.
밤 10시 무렵부터 모이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이 보신각 근처에 자리를 잡았지만 카메라는 그들을 제대로 비추지 않았다. 인파 속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한 해를 보내는 소감과 새해를 맞이하는 소망을 생생히 듣는 '현장 기자 리포팅'도 예년 같았으면 흔히 볼 수 있었을 꼭지겠지만 생략됐다.
KBS 카메라는 보신각 앞에 모인 인파를 철저히 외면했고 배경화면은 근처 광교와 청계천 부근의 야경을 훑거나, 광교 쪽에서 보신각을 클로즈업하는 정도였다. 이 때문에 다른 해와는 달리 진행자들에게 카메라가 고정된 순간이 많았고 윤인구 김진희 아나운서는 예년의 진행자들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해야 했다.
KBS 생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방송장악 저지' '한나라당 해체' '이명박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수천 개의 손피켓과 촛불, 풍선, 깃발 등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KBS가 의도적으로 외면했고 심지어 조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일 현장에서 옥탑 대형 광고판을 보며 이 방송을 시청한 촛불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KBS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한나라당 해체' '명박 반대' 구호와 함성이 끊이지 않았고 타종 순간에는 노란 풍선과 풍등 1000여 개가 하늘로 날아갔지만 화면에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용 KBS"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박수 소리가 마치 예술의전당 기립박수 느낌"
생방송이 끝난 후 KBS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집에서 이 방송을 본 누리꾼들은 KBS는 TV로 중계되는 일부 장면에 가상의 박수소리 음향을 처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함성과 구호소리를 묻기 위해 가상의 박수소리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누리꾼 '라쿤'은 타종행사가 끝나자마자 KBS의 생중계와 인터넷방송인 아프리카(사자후TV)의 생중계를 비교해 'KBS 보신각 생중계가 보여준 2009 대한민국'이라는 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
'라쿤'은 "새해맞이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KBS와 사자후 TV를 동시에 시청했는데 조금 이상해 동시녹화를 했다"면서 "인터넷방송에서 보여준 폭넓은 앵글로 봤을 때는 많은 분들이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들고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그러한 시민들의 분위기를 KBS 생중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라쿤'은 "내 귀를 의심하게 한 것은 가수들이 노래할 때 그리고 중간 중간 삽입되던 음향 효과가 너무도 현장과는 달랐던 것"이라면서 "추운 날씨에 많은 분이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장갑을 끼고 있었고 진행자 마이크에도 섞여 들어갈 정도로 구호소리가 거세게 외쳐지고 있음에도 박수 소리가 마치 예술의 전당 안에서의 기립박수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현장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치우친 모습을 보여준다고 가정할 때 2009년도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의 모습은 과연 공정하고 믿을만할까라는 의심을 저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라쿤'이 오늘 새벽에 내놓은 이 영상은 벌써 수만 명의 누리꾼들로 부터 퍼 날라지고 있다. 다른 누리꾼들도 'KBS의 타종 왜곡 방송 실태'라며 현장과 KBS 중계를 비교하는 수십 개의 글을 작성해 인터넷에 내놓고 있다.
KBS 홈페이지에 누리꾼들의 비판 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