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신념으로 아내를 일으켜세운 장인어른.
오창균
올해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불혹(不或)이라는 40살이 되었다. 결혼 후 12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을 다 하지 못할만큼의 세월이고 훌쩍 커버린 아들과 딸을 보면서 안정된 가정생활을 지켜온 부부는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했었다. 새해인사로 많이 하는 말이
'돈 많이 벌어 부자되고 건강하시라...'는 말이다.
그런데 돈이 많아 부자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서 그 가늠을 정하기 나름이지만 건강이라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 죽음의 길에 이르는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갑작스런 사고나 병마에 걸려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인생도 있다. 이것은 개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 버리기도 하는데 건강의 중요함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에는 생활고(生活苦)나 바쁜 생활에 쫒겨 또는 나와 가족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무심하게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장모님이 7여 년 전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상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했지만 당장에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어서인지 관리에 소홀했던 탓도 있었다. 한방,양방 등 전문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의식은 회복할 수 있었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환자였다. 통큰 여장부였던 장모님은 삶에 대한 의욕을 뻇았겼고 아기처럼 응석을 부리는 것 같았다.
부축을 받아야먄 겨우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상태인지라 장인이 24시간을 항상 곁에서 간호를 하면서 물리치료를 병행했다.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지만 장인어른의 끈질긴 노력으로 조금씩 혼자서 몸을 겨우 가눌 수 있는 상태가 되어 희망이 조금씩 보였다. 집안 곳곳을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처럼 만들어 놓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장모를 야단까지 치면서 지극 정성으로 운동시켜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 할만큼 몸놀림이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가족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아내의 언니인 처형의 남편은 빚으로 가족들에게 이중고를 떠넘겨서 더욱 힘들게 하였는데 이 사실은 나에게는 숨겨서 알지를 못했다. 내가 알았더라면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내에게 있지만 그만큼 아내와 처갓집식구들의 고통이 컸던 만큼 나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 했으리라.
신용불량자였던 그 사람은 실직 후에 사업을 한답시고 가족들에게 돈과 보증을 수차례 요구하며 분수에 안 맞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빚만 남겨놓고 이혼으로 홀로 떠나가 버렸다.
지금까지도 빚은 남아 있어서 가족 수입의 일부분으로 계속 갚아나가고 있고 요즘은 경제상황이 안좋은 때라 더 어렵기도 하지만 혼자서 외출도 하고 운동도 다니는 장모님의 건강 회복을 위안삼아 조금 더 뛰고 열심히 살자고 한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한 번 큰일을 겪고 나니 가족과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걱정인 것은 가족력의 유전인지 아내의 체질이 식성까지도 장모님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출산 후부터 몸에 불은 살이 빠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고 둘째를 낳고는 뱃살이 더 불었다.
그때부터 나의 잔소리는 온통 건강에 맞춰져서 아내를 들볶았다. 당장에 운동을 시작하고 식습관을 바꾸라며 식단도 직접 내가 준비하였다. 아내도 자신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인정하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작심삼일'을 반복하였다.
집안에 런닝머신, 싸이클, 아령, 훌라후프 등의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헬스클럽을 등록해도 꾸준하지 못하고 몇달만에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변명일 수 있지만 아내가 하는 일이 꽃집이라서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하고 식사시간도 제때가 없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이 될 리가 없어서 남는 시간에 운동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내뿐만 아니라 나의 건강도 문제였다. 90kg에 육박하던 몸무게와 배만 볼록한 전형적인 올챙이 비만이었다. 나 역시 바쁜 일에 쫒기면서 몇년을 살다 보니 불규칙한 생활리듬에 스트레스로 인한 음주가 빈번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바지가 허리가 아닌 뱃살 아래에 걸치게 되자, 결국에는 토요일을 휴무일로 만들어 놓고 매주 산에 오르기로 했다. 10년도 훨씬 넘은 첫 산행에서는 정상근처는 택도 없이 중간쯤에서 포기하고 말았고, 다음날 온몸이 쑤셔서 꼼짝없이 누웠다. 그렇게 주말마다 꾸준히 산을 돌아다니다 보니 체력회복이 되었고 한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돌기도 했다. 몸무게도 7kg가량 줄어서 몸이 가벼워졌고 정신적으로도 산속 공기는 더 없이 좋았다.
아내도 연속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운동에 대한 열정은 포기없이 헬스클럽과 걷기 등으로 한때는 몰라보게 살을 빼기도 했지만 요요현상이 반복되었다. 올해 2월 달에 친구 회사에서 직원들과 가족들을 위한 건강검진에 우리 부부를 넣어줄 테니 종합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흔쾌히 승낙했고 반값이라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검사비용을 기분 좋게 내주었다. 대학병원에서 우리 부부는 40평생 처음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아 보게 되었는데 큰 걱정없이 결과를 나름 낙관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등산을 꾸준히 했었고 아내도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던 때였다. 다만 나는 20년 이상 지속된 음주가 좀 걸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