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산낙엽 수북이 깔린 계곡...물웅덩이...
이명화
계곡 길을 따라 걷다보니 중간에 화장실도 두 군데가 있고 지붕 있는 넓은 평상도 놓여 있어 휴식하기에 좋고, 비를 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날은 흐리고 숲은 고요하다. 얼마쯤 올라가자 내원암과 대운산 정상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에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대로 가다간 비를 맞을 것 같은데, 계속 가도 좋을지 갈등이 생긴다. 경사 높은 등산로에서 비는 오다가다 한다.
소리 없이 이슬비가 조용히 내린다. ‘비가 오는데 계속 갈 거에요?’ 하고 앞서 걸어가는 남편에게 물어보지만 남편은 이렇다 말 한 마디 없이 계속 걷는다. 비가 온다고 해도 간다는 뜻이다. 어제 날씨가 워낙 화창했던지라 미처 일기를 보지 않고 온 탓에 우비도 준비를 못했다. 이 추운 겨울에 비를 맞으며 등산을 계속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싶어 걸음을 걷다가 서고 또 걷다 서곤 하지만 남편은 포기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괜히 얄밉게 느껴진다. 지난여름, 천성산 공룡능선에서 말벌에 쏘여 하산하면서도 남편은 마주 오던 등산객한테 ‘정상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냐’고 물었던 그때 생각이 떠올라 더 얄미워진다. 공룡능선을 올라가다가 어쩐 일인지 기분이 아주 안 좋고 더 나아가기 싫어서 한참동안 바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 얼마가지 않아서 말벌한테 쏘이는 일이 벌어졌었다. 이번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