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광장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성당 광장에 마련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서진석
유치 결정 후 몇 년간 이어진 '집단문화교육'2006년부터 지금까지 빌뉴스의 낙타라고 불리는 트롤리버스와 일반버스의 벽면은 리투아니아 출신을 비롯한 전 세계의 문화예술계 인물에 관한 정보로 도배되어 있을 정도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쇼스타코비치 등 유럽 최고의 작곡가들과 리투아니아 출신의 츄를료니스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는 버스들은 최근 수년간 내내 빌뉴스 시내를 누비고 돌아다녔고, 몇몇 위인들의 사진은 빛이 바래 제대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건물 대규모 전광판, 버스 정류장 광고판, 옥외 광고판 등 사람들의 눈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릴 것 없이 무차별 쏟아붓는 문화교육이 싫은 사람은 그냥 집에만 있거나 완전히 눈을 감고 다녀야할 판이었다.
2009년에 대한 준비는 억지로 시민들에게 문화교육을 시키는 데에만 멈추지 않았다. 13세기부터 17세기 리투아니아 정치권력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로서는 흔적만 남아있는 왕궁을, 7월 6일 리투아니아 최초이자 유일한 국왕인 민다우가스 대관식 기념일에 맞추어 완공하기 위해 재건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완공된 그 건물에는 과거 중세 리투아니아 왕족들의 삷을 재현해 놓은 볼거리와 함께 국제박람회까지 열 수 있는 대규모 전시장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물론 그런 것들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무대예술 등 전반적인 문화와 관련된 행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로 빌뉴스에 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연대회, 음식축제, 패션쇼 등의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이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세계 각국에 퍼져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빌뉴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리투아니아 문화대사제도이다. 직업, 나이, 학력 등에 관련 없이 빌뉴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라면 소정의 절차를 걸쳐 빌뉴스의 문화대사로 활동하여 각국에 빌뉴스에 대한 정보를 알리며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리투아니아 항공에서는 리투아니아 문화대사들에게 항공권 10%를 할인해 주는 과감한 특권까지 선사해 준다. 현재 리투아니아의 많은 유명인사들과 더불어 대략 500여 명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한국인도 두 사람이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돈줄이 끊겼다...지금까지 이번 행사를 치러온 나라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도시들 중심이었다면, 빌뉴스처럼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만한 개발도상국의 도시에서 열린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라서,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이번 행사는 일개 도시를 홍보한다는 가치를 넘어선다.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는 빌뉴스만이 아닌 국가 자체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올해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국인들의 관심과 비교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성공적으로 끝날 것만 같던 이 행사는 난데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가 리투아니아 역시 그냥 비켜가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 행사에 가장 큰 후원자인 리투아니아 정부가 행사 지원액을 50% 삭감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 전 문화수도조직위원회는 경제위기를 통감하여 초기 예산을 무려 12%나 줄이기로 자체 결정을 내렸으나, 정부가 발표한 50% 삭감은 이번 행사를 '제대로' 치르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수준. 2009년 행사를 위해 예상되는 금액은 총 10억5천만 리타스(우리돈으로 대략 558억원)이지만 그 중에서 리투아니아 문화부가 담당한 금액은 4190만 리타스로 그 외 금액은 빌뉴스 시청 1600만 리타스)과 업체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될 예정이었다.
12월 초 그러한 예산 축소 결정이 발표되자 정작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행사를 취소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고 말았다. 현재 전자음악축제와 아이슬란드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대규모 야외공연 프로젝트 등 굵직한 행사들의 취소 위기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