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두 여자가 생각난다

아픈 친구 아들 생일 챙겨주러 가던 여자

등록 2008.12.26 20:44수정 2008.12.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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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감동과 만나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인정이 메말라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살기가 각박해진 것일까. 이맘때가 되면 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 여자는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가는 동안 택시기사에게 친구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가장이 되어야 했던 친구는 그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 하면서도 늘 밝은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이었다. 고생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건강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까지 와 버렸다.

 

오늘이 그 친구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생일.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케익을 사들고 지금 그 아이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방문하는 길이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주머니에서 3만원을 꺼내주면서 케익과 함께 그 아이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여자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나오니 그 때까지 택시 기사는 가지 않고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그 여자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 택시기사에게 하루 3만원은 정말 큰 돈이다. 그런데도 그는 선뜻 내놓았다. 그는 또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야 수입이 오를텐데 그 여자가 나올 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 여자의 친구가 불쌍해서 울었고 그 여자와 그 택시기사의 마음씨가 정말 아름다워서 울었다. 이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전해줄 때마다 또 울었다. 그 불행에, 그들의 아름다움에. 이런 친구가 있는 한 그녀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의 친구는, 그 아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우리는 연말이 되면 이웃돕기라고 떠들면서 형식적인 참여로 마치 할 일 다한 것처럼 서둘러 끝내버린다. 정말 그들에게는 몇 푼의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나 역시 부끄러움을 수도 없이 느끼며 산다. 형식적인 마음씀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얄팍한 동정이 아니라 정말 함께 해주는 따뜻한 마음씨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편하고 싶어, 귀찮은 것이 싫어 그만 외면하고 만다.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닥치면 여전히 똑같이 행동해버리곤 한다. 언제쯤 나도 그들처럼 마음이 도타워질까.

2008.12.26 20:44ⓒ 2008 OhmyNews
#연말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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