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이상열 화백, 시집 <손톱이 아프다>출간

세상의 행복과 아픔을 시로 쓰며 그리는 화가

등록 2008.12.22 20:36수정 2008.12.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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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출신으로 홍익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이상열(46) 화백은 현재 울산에 거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다. 틈틈이 지역 예술고등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살고 있다.

동양화가 이상열은 지난 2005년 ‘문학저널’에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을 했다. 시인으로 등단 이후 첫 시집이 <손톱이 아프다>(도서출판 시와반시) 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자면, 역시 시를 쓰는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그리 듯 그는 시를 쓰고 있다.


꽃이 있고, 가족이 있고, 그림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시어로 표현을 한다. 그의 시를 곰곰이 읽다보면 한편의 그림이 된다.

날 좋은 오후/양지쪽에 쪼그려 앉아 톡톡/손톱을 깎는다/유난히 긴 손톱을 정리하다 생각한다/아버지의 새끼손톱과 꼭, 닮아 있는/내 새끼손톱과/동생의 새끼손톱,/가장 어린 손톱이 아니라 아버지 새끼라서 새끼손톱인가?/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손톱 밑을 찝었다/아프다/요즘, 아버지도 아프다/손톱에도 피는 흐른다/   (손톱이 아프다- 전문)

시인은 손톱이 아프다에서 아버지와 닮은 나와 동생의 손톱이라는 설정을 통하여, 부자간의 동질화는 물론, 찝힌 손톱을 매개로 부친의 병환을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국 아픈 손톱으로 부자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유전형질과 부자애를 보여주는 것이다. 피 흐르는 손톱은 투병중인 아버지의 모습이며, 또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주 가는 삼릉에는/삼릉보다 유명한 칼국수집 있더라/할머니 두 분 10년 넘게 손칼국수 만드는데/알고 보니 발 칼국수였더라/손으로 치대고 발꿈치로 조근 밟아/정원 보름 남산에 걸린 달만한 반죽거리/쌓이면 삼릉보다 당연히 높고/남산만큼 높을 텐데, 국수가락 좍 펴들면/서울 남산 갔다 왔을 텐데/10년 세월 하루같이 발금 손금 다 닳도록/치성으로 빚은 국수 허기진 남산 부처들/ 두루 먹여 살리고 나까지 배부른데/할머니/오늘도 치대신다/조근조근 찰지게 치대신다/할머니 치댄 반죽 오릉을 오르고 대릉을 이루고/남산 위에 소나무처럼 오래오래 사시겠다/        (발 칼국수 - 전문)

작가 이상열은 3,000원 짜리 칼국수를 통하여 국수를 만드시는 두 할머니를 손과 발을 전부 이용하여 맛있는 칼국수를 만드는 보살로 그리고 있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방문한 손님들을 부처를 표현하고 있다.


국수를 맛있게 먹는 모든 사람들은 부처가 되는 것이고, 결국 그 국수를 만드신 두 할머니의 마음은 삼릉을 완성하는 것이다. 완성된 삼릉 위의 소나무처럼 할머님들은 성자가 되어 오래오래 사실 것을 기원하고 있다. 참, 아름다운 비유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늙은 소나무 몇 그루/흐린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무섬 마을에서,/보랏빛 쑥부쟁이 아무렇게나 피어있었다/물은 그냥 흘렀는데 그날 밤/눈물바람으로 구룡포 간 선희는 여태/소식이 없다/해국이 피면 놀러 오라고 바람처럼 먼데서 소식이 왔다/물길 닮은 사람들이 나에게 왔다갔다/물길은 구부러져 여태껏 내 복판에서 흐르는데,/꽃이 질라면 또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水流花開 - 전문)


수류화개는 영주의 물동이 마을 무섬에서 쓴 시이다.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인생과 사람을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비유하여 쓴 시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 마치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것처럼. 작가는 무섬에서 물과 같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인생사를 다시 읖조리면서 인간사를 그리고 있다. 그에게 구룡포로 간 선희는 아직도 그리운 님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반가운 손님이기도 한 것이다.

파머스 마켓에 장보러 갔다가/서리태 한 줌을 곁눈질/슬쩍 하면서 서리했다/고추밭 귀퉁이 거리 간격 딱/맞춰서 몇 알 심고/방울토마토 옆에 몇 알 심고// 누런 콩잎 찬바람 불면/숯 검댕 입가에 미소 지며/콩서리 맛나던 지난 기억에// 아침마다 물주고/저녁마다 풀 뽑고/화초보다 예쁘게 튼실하게 키웠건만/아! 글쎄 이놈이 키만 컷지/씨가 없다/이놈은 분명 아메리카에서 온/그 문제의 콩/아니면/값 안 치른 NO 싹수!/  (파머스 마켓- 전문)

장을 보러 파머스 마켓에 갔다 ‘배고픈 자는 누구나 서리해도 좋다’고 해서 서리태로 이름 지어진 서리태를 한 줌 훔쳐온 시인이 고추밭에 정성들여 심고 가꾸었지만, 이놈이 키만 크고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미국 사랑 감기로 고생을 하면서 미국산 감기약을 먹으면서 영어 노래를 들으며, 미국으로의 밀항을 꿈꾸며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면서 미국산 농산물에 조소를 던진다. 물론 씨를 몰래 훔쳐온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하는지 싹수없는 자신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파머스 마켓이라는 한 편의 시를 통하여 미국산 농산물을 팔고 있는 우리 농협의 실태도 비웃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집의 백미는 역시 감자인 것 같다. 아버지가 오셨다/대한통운으로 오셨다/오시자마자 일단 보일러실로 모셨다/그리고 잊어버렸다/아버지 답답하셨던지 퀴퀴한 보일러실 안에서/얼굴을 내미셨다/아버지 그새 쪼글쪼글해졌다/많이 화나셨는지 찡그린 미간마다 독기가 서려있다/땡글땡글하던 젊은 날/사랑마루 아래 가득하던 새파란 아버지가/마구 나오신다/새파란 아버지를 나는 똑똑 분질러 버린다/푸르뎅뎅한 아버지 눈알을 후벼 파고/아버지 멍든 가슴을 뭉텅뭉텅 썰어 그나마 남은 아버지/하얀 속살을 파먹는다/아직도 쪼글쪼글한 아버지가 보일러실에 있다/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부지런히/쪼글쪼글한 아버지를 먹어야 한다/   (감자 - 전문)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아버님이 대한통운 택배로 감자를 보내왔다. 시인은 받아든 감자를 보일러실에 넣어둔다.  한참을 지나 싹이 트고 쭈글쭈글해진 감자를 보고서 너무 놀라 싹을 분질러버리고 썰어서 먹는다.

시인에게 아버님은 감자가 되어 오셨다. 그 감자는 무심에게 보일러실에서 한참을 잠을 잔다. 요즘 세대 자식과 늙은 부모와의 관계를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자식은 나이가 들고 부모님과 같이 스스로가 쪼글쪼글해지는 날이면, 스스로 아버지를 찾게 되고, 아버님을 그리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가 보다. 

이상열 시인의 시집 <손톱이 아프다>에서 고향을 느끼고 부모를 느끼며, 사랑을 배운다. 또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만의 시어를 배우고, 시를 통하여 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운 사람들을 시의 눈으로 보게 된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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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이상열.jpg
#화백 #시인 #이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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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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