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모자상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상이며 천진난만한 아가의 모습입니다.
임윤수
'솔 동산' 이거나 '소나무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솔뫼'에서 알 수 있듯 솔뫼성지는 낙락장송의 소나무들이 동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불그스레한 홍조 빛과 거무튀튀함이 어우러진 소나무껍질은 야박하지 않을 만큼 푸근해 보였지만 굳건한 모습입니다.
대나무처럼 쪽 곧지는 않았으나 굴곡을 이루며 부드럽게 자랐으니 여유가 있었고, 휘휘 늘어트린 가지 끝마다 쪽쪽 뻗어있는 솔잎에서는 변하지 않을 지조와 청빈함이 엿보입니다.
비질이라도 해 놓은 듯 나뒹구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주차장도 깨끗합니다. 휑하니 넓지도 않고, 옹색하리 만큼 좁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솔 동산을 서성입니다.
솔동산, 솔뫼 마을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출생지이기도하지만 김대건 신부의 조상들이 일상을 살아 온 생활 터전이기도 합니다. 김대건 신부의 조상 모두는 서학인 천주교를 믿고 증언하다 순교하였습니다.
1821년 8월 21일 이곳에서 출생한 김대건 신부는 7살까지 이곳 솔뫼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박해를 염려한 할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1846년 9월 16일, 젊다고 하기에도 너무 이른 25살이라는 나이에 순교를 한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학 유학자, 조선전도제작자, 조선 최장거리 항로 개척자, 여행자, 다국어 번역∙통역자이기도 합니다.
25년이라는 일생을 오롯이 전도만을 위해 살다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였던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어 전세계 가톨릭의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인 김대건 신부의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 글을 모두 읽고 성지 안으로 들어섭니다.
안으로 들어서도 역시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복원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왼쪽에 있습니다. 팔작지붕으로 인 기와지붕, 황토 빛 벽,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대청마루, 벽에 내걸린 채반, 처마 밑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장작더미, 양지바른 곳에 놓여있는 장독은 물론 어느 것 하나 깨끗하지 않거나 흐트러진 것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쓸고 닦았음이 느껴지지만 발걸음을 꺼리게 할 만큼 거부감 이는 깔끔함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은은한 깨끗함입니다. 지금이야 성지가 되어있지만 순진무구하기만 한 한 명의 아동, 꼬마 김재복(김대건 신부)이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 쬐는 이 마당에서 까르르 거리며 뛰어 놀았을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봅니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표정의 모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