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소장과 함께 유권자센터 초창기부터 활동하며 실무를 총괄하는 김동찬 사무총장
김헌태
- 언제 미국에 왔나?"1994년 27살이 되던 해 미국에 왔다. 대학 졸업(건대 화공과 85학번, 89년 건대 부총학생회장) 후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다 미국에 와서 친척분이 운영하는 세탁공장에서 일을 도왔다."
- 처음 한인유권자센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김동석 소장을 1995년에 만났다. 뉴욕의 젊은 한인들과 청년단체를 결성하고 뿌리교육, 한글학교, 풍물강습 등을 펼친 '한뜻 열린마당'의 일을 했다. 이런 활동이 한인사회 내부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정치력 신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이후 1996년 KAVC가 설립된 이후 계속 유권자센터의 일을 해왔고 수 년 전부터는 생업으로 하던 학원사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전업 활동가로 나섰다.
-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뭐라 해도 '위안부' 결의안 통과였다. 또 비자 면제 프로그램 서명 작업 역시 무척 보람된 일이었다.
- 가장 아쉽거나 힘든 일은?"한인 내부에서 우리의 일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한인들이 뻔히 불이익을 당할 것이 눈에 보이는 데도 이에 대해 함께 대응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뒤늦게 심각성을 알고 부랴부랴 대책을 세워도 늦는 경우가 있다. '그린 카트(green cart)' 법안이라는 과일 노점상을 허용하는 뉴욕시의 법안이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다. 뉴욕시민의 과일섭취량을 늘려 건강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이 법안 통과되면 소규모 점포를 가진 대다수의 한인 청과상의 피해가 뻔히 보이는데도 청과상 협회가 이를 적극적으로 우리와 연대하여 대응하려 하지 않았다. 뒤늦게야 함께 대응했고, 우리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이 같은 조치를 막아 내지 못했다. 아쉬운 기억이다."
- 앞으로 한인유권자센터의 활동계획은 어떤 것인가?"우리는 30년을 바라보고 이 일을 시작했다. 이제 절반쯤 온 것 같다. 그동안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한인과 한국의 국익 모두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향후 미국 내 타 한인단체들, 또는 타 지역의 단체들과 더욱 더 유대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영향력을 늘리고 한인들의 권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한국의 국익과 관련된 부분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미국 내 한인, 그리고 한국의 이해관계를 통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비자면제 프로그램 일 것이다. 그것은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많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관광업 등을 하는 한인사회에게도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분명 미국인이지만 모국의 이해관계가 분명 우리에게도 긍정적으로 작동한다."
"변호사로서 시민운동... 학풍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박제진 변호사(37)는 한인유권자센터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이다. 그는 2004년부터 자원봉사자로서 한인유권자센터 일에 참여하고, 2006년에는 직업 활동가로서 유권자 운동과 본격적으로 결합했다. 한인유권자운동이 점차 전문성을 띄게 되면서 한인유권자센터 내부에서의 그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