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의 직장맘 김가람(가명)씨. 결혼 5년차. 세 살난 딸아이를 두고 있다.
최은경
- 그렇게 힘든데, 사회생활을 왜 하는지 궁금하다.
김 : "일하는 지금의 내가 좋다. 행복하다. 난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고 믿는다. 일 시작하기 전, 9개월 동안 애랑 단 둘이 집에만 있을 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이야기도 안 하고 티비만 보는 생활은 정말 별로였다. 9개월때부터 어린이집 보내고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아이 역시 적응을 잘해서 요즘은 어린이집 안 가면 허전해한다."
한 : "아이를 낳고 두 달째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고 있는데, 과연 내가 아이에게 '올인'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 백일 지난 아이와 떨어져 지낸다고 생각하면 좀 안타깝다. 그 때문에 1년 정도 직장을 쉬어야 하나 싶기도 한데, 누가 나를 기다렸다 써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년 1월 복직을 결정하긴 했지만, 고민이 많다."
김 : "어린이집은 왜 생각하지 않나?"
한 : "우선 남편이 못 미더워 한다. 어린이집 맡기는 거, 사정이 생기면 맡길 수 있는 건데, 언론에서 맨 사고는 어린이집에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런 거 때문에, 남편도 어른들도 어린이집 못 미더워 한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맡아주시겠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인데, 사시는 곳이 지방이라 어쩌면 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 사실 내 처지에서는 아기를 매일 보면서 직장생활 하려면 어린이집이 나을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 남보다는 가족이 나을 것도 같고."
김 :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이집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가 싶다.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 아이에게 맞는 어린이집이 분명히 있다. 나도 9개월 무렵부터 보냈는데, 육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집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돌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어린이집은 보내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그렇다. 특히 어린이집 하면 감기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꼭 그런 건 아니다. 난 시댁에서 2주 있으면서 애 태어나고 그렇게 심한 감기는 처음이었다."
-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이 자유롭기란 불가능해 보인다.한 :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있다. 무시무시한. 외출해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늘 "애는?" 하고 묻는다. '그 어린 아기를 두고 어떻게 나올 수 있냐'는 식으로. 심지어 직장 다니는 엄마들에게 '돈 몇 푼이나 벌겠다고…' 하는 소리도 한단다. 내가 엄마인 건 맞지만, 성인여성으로서 균형 잡힌 생활은 필요한 거 아닌가. 애 아빠한테 "애는?" 하고 물어보지는 않지 않나. 개인으로서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프랑스의 경우, 사회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애 엄마도 자기 시간을 당당히 쓸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부부끼리 데이트를 해도 우리처럼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는다. 우린 애를 낳음과 동시에, "애 엄마가 어딜 가? 애 엄마가 뭘 배워?" 이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듣고 살지 않나. 엄마에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
김 : "우리 시아버지는 나를 참 예뻐하셨다. 그런데 이런저런 문제로 남편과 티격태격한 걸 들으시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할 거면 직장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와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멍' 했다. 가만 듣고 있기는 좀 억울해서 아버님께 "남편도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 제가 직장을 그만둘 게 아니라, 아범에게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데로 직장을 옮기라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우리 아들 출세해야 한다"고 하더라. 벽이 느껴졌다."
한 : "우리 언니가 하는 말이 있다. 시댁은 시댁. 그냥 흘리라고. 며느리보다 아들이 먼저인 건 어쩔 수 없다고. 우리 시어머니는 내가 15시간 진통 끝에 결국 수술하고 힘들게 아이를 낳았는데, "둘째 낳아라. 혼자는 안 돼" 하시더라. 수술 부작용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김 : "시어머니라는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되면 그런 행동들이 나오는 거 같다.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첫 애 낳을 때였다. 진통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신랑이 옆에서 졸더라. 진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피곤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머님 보시기에는 안쓰러웠는지 김밥에 뜨거운 커피를 싸와서 "애 낳는 사람은 낳는 사람이고 너는 먹고 살아야지" 하며 억지로 입에 넣어 먹이시는데, 할 말이 없더라.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탯줄 자를 때도 오버랩 되더라. 어쩌면 지금 내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아이한테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엄마의 역할은 뒤에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테두리 역할이면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살림, 일, 육아 세 가지 다 포기할 수 없다" - 우리 이야기 하자고 해놓고선, 남편, 아이, 시댁이야기만 한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변한 걸 실감할 때가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