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감성시대, 감성이 경쟁력이다

일제고사 부활을 보며

등록 2008.12.19 10:44수정 2008.12.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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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교사나 학부모 모두 난리였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한가하게 책읽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고3이었던 우리 큰 아이에게 책만 사주었다. 학교에서 사라는 책 외에도 아이가 원하는 책은 모두 사주었다.

고3이라 상담하러 갔더니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공부는 하지 않고 책만 읽는다고 나무랐다. 야간자율학습으로 자정에야 돌아오는 아이는 숨막히는 학교생활을 엄마가 사준 책 읽으면서 견뎌냈다고 한다. 그 힘든 시기에 읽었던 책들이 삶에 자양이 되고 있다는 아이는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산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아이가 졸업하자마자 바로 온 나라가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분위기로 갑자기 바뀌었다. 우리의 감성을 키워주는 좋은 책을 읽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못 읽게 했던 책을 이제 와서 어거지로 읽게 하니 얼마나 아이들이 힘들었을까? 스스로 좋아서 읽는 책과 억지로 의무감에서 읽어야 하는 책은 일과 놀이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깜짝 놀랄 생각들을 잘도 해낸다.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잘한다고 칭찬만 해주어도, 아니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만 두었어도 창의력을 일부러 키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면 엉뚱한 생각 한다고 나무란다. 그렇게 아이들의 창의력을 다 죽여놓고는 언제부턴가 경쟁력이 있는 창의력만이 나라를 살린다며 창의력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능력있는 부모라고 착각한다. 더구나 점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니 부모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사교육비 지출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학교가 성적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다 보니 학생들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자신감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자신감은 자아존중감에서 나온다. 자아존중감은 어린 시절에 길러진다. 그런데 모든 것을 점수로 평가하니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어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 학년 아이들이 떠들다가도 "시험"이란 말만 하면 조용해진다. 시험은 아이들에게 아마도 제일 무서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 일제고사까지 부활했으니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점수는 지상목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바닥나가는 현대사회는 지성이 아닌 감성이 이끌고 간다. 지성은 상대방을 움직일 수 없지만 감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빗장을 풀게 한다. 경제위기 한파로 대부분 기업들이 극심한 매출부진을 겪고 있다.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업체도 늘어만 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 한파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진 금년같은 혹독한 불황기에도 정수기, 화장품 등 방문판매회사들은 놀라울 만큼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여 회사마다 감원바람이 불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직원 수도 천여 명을 늘일 계획이라고 한다. 차갑게 얼어붙은 고객들의 마음을 감성으로 파고 드는 그들의 힘이 가져온 놀라운 결과였다. 감성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한다.


나는 해마다 아이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감성훈련을 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반짝이는 그들의 감성을 발견하면서 행복했었다. 저학년일수록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 자신의 삶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감성을 길러줘야 한다. 그러나 점수 앞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감성은 과연 자리할 수 있을까? 그들 안에 숨죽이고 있는 감성은 언제쯤 빛날 수 있을까. "진짜 학력은 감성과 사회적 소통능력이 뒷받침될 때 나온다"는 일본 대안학교 교장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감성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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