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주당 환헤지 피해 대책위원회 추최로 열린 'KIKO 등 환헤지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KIKO OUT'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선대식
'구조조정' 칼 앞에 선 김 차장과 '이민 결정'한 정 부장정상일(45)씨는 지난 달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현재 이민을 준비 중이다. 연 매출 300억원대 규모의 나름대로 견실한 중소기업에서 부장까지 지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는 그동안 말 많던 키코(KIKO) 사태 때문.
자금을 담당했던 정씨는 "회사 매출 절반이 수출에서 나오기 때문에 작년에 거래 은행으로부터 환헤지상품 가입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면서 "환율이 폭등하면서, 멀쩡한 회사는 장부상으로 계속 적자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면서 "은행 쪽에 여러 하소연도 해봤고, 정부가 대책을 세워서 어떻게 한다고 기대도 했지만 모두 접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씨는 "피해의식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환율 등이 좀 걱정되지만, 이번 기회에 캐나다 쪽으로 이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큰 아들인 정아무개(16)군은 건강 문제로 4년 전부터 캐나다로 건너가, 치료와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
빈곤층부터 중산·상류층, 보수언론까지 등돌린 민심정 부장이나 김 차장 모두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중산층'에 있던 그들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악몽을 경험한 이들은 2008년 12월 다시 혹독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생활은 더 힘겹다. 경기가 침체되고 본격적인 불황이 몰아치면 이들 계층이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이들과 함께 중산층은 물론이고 상류층도 고통의 대열에 끼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1년 전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에 지지를 보냈던 계층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그들의 '지지'를 접은 지 오래다.
특히 일부 상류층의 외국 이민도 크게 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최근 내놓은 이민비자와 영주권 취득 자료를 보면 한국인들의 취업과 투자이민이 작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새롭게 영주권을 받은 한국인들은 1만6066명.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7125명이 취업이민이다.
투자이민 중에서도 50만달러만 투자하면 거주지 제한 등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들이 1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와있다.
해외이민전문 상담업체인 S사의 김아무개 부장은 "환율 폭등으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상담하는 경우는 올 들어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취업이나 투자 이민의 경우는 대체로 경기를 별로 타지 않는 상류층쪽이다 보니, 많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4대그룹의 한 고위인사는 "미국산 쇠고기사태를 비롯해, 금융위기까지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보여준 정치적, 경제적 위기관리능력은 한마디로 낙제점"이라며 "과거 노무현정부 때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판했던 보수인사들조차 (현 정부가)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금융위기로 억울하다고 할수 있지만, 정부 스스로 '시장'에 역행하는 과거 개발연대식 정책 실패 책임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그런 정책 실패는 서민층뿐 아니라 주식과 펀드 몰락 등 금융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중산층 이상에게도 실질적인 피해로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