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하면 신포만두다. 시장안에는 중국식 산둥만두집도 있다.
이장연
개항 이후 개항장을 통해 온갖 상품이 들어왔는데요. 신포시장은 어시장과 야채시장으로 출발해 1927년 공설 제1일용품시장과 공설 제2일용품시장으로 됐다가 광복 이후 지금의 재래시장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합니다. 이 신포시장이 있는 신포동은 개항 당시 정치, 경제, 금융,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신포(新浦)'란 새로운 포구를 말합니다. 헌데 신포동의 원래 이름은 '터진개'라고 합니다. '터진개'는 바다쪽으로 터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네요.
저는 인근 자유공원 아래 고등학교를 나와서, 등하굣길에 신포동과 신포시장을 매일 지나쳤습니다. 수중에 돈이라곤 버스표(예전에는 교통카드가 아니라 토큰이나 종이로 된 버스표를 사용했다) 살 차비 밖에 없어 그 맛난 닭강정과 만두, 찐빵을 사먹을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시장 골목을 지날 때 풍겨오는 왕만두와 닭강정 냄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간혹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닭강정을 사오시면 신포시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시내에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가 늦은 저녁 신포시장을 둘러봤습니다. 볕과 비를 막아주던 파란 차양막 대신 유리로 된 지붕이 시장골목의 비를 막아주었습니다. 바닥 또한 예전과 달리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인천의 상권이 동인천에서 다른쪽으로 이동했고 주변에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바람에 재래시장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김이 '풀풀' 솟아나는 왕만두와 왕찐빵을 쪄내는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쓸쓸한 겨울밤처럼 옛영화의 추억이 어려있는 인천 중구 신포동 신포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덧. 신포시장과 신포동 골목마다 즐비했던 옷가게와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네요. 경기가 더욱 안 좋다보니 그 잘나가던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