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어머니헌책방 나들이를 온 어머니와 딸아이.
최종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 앞길을 헤아리면서 그처럼 알음알이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모든 일을 제가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모두 제가 스스로 겪고 부딪혀야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뜻이 있어서 그리하셨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러하시지는 않은 듯하고, 당신들 삶을 꾸리는 가운데 벅차서 좀 내버려 두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하든 못하든 믿지 않았으랴 싶기도 합니다. 정 힘들거나 엇나가면 넌지시 손길을 내밀면서 도와주되, 제가 스스로 ‘더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외칠 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셨다고 할까요.
이리하여 저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림을 꾸리며 살았고, 두 번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낯선 새침데기와 깍쟁이하고 부대끼면서,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대에 스스로 나서서 들어가 몇 해 썩으면서, 또 맨주먹으로 책마을 밑바닥 일꾼이 되어서 여러 해 구르면서, 그러다가 충주 산골짜기에서 ‘돌아가신 어르신’ 원고더미에 파묻혀 먼지를 먹어 가면서, 그런 다음 다시 고향 인천으로 3.5톤 짐차 석 대에 가득 쟁여 실은 책짐을 손수 싸고 나르고 하여 다시 갈무리하고는 동네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금방이지만, 그래도 열 몇 해가 지난 나날인데, 앞으로 걸어갈 길은 한참 멀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저는 지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면서 살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일을 하리라고는 예전에는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가지, “어른다운 어른으로 사는 일”이 꿈이었고,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자면 돈벌이에 매여서는 안 되지만 돈을 안 벌고 탱자탱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더욱이 집살림이 넉넉해서 돈 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 많은 일자리를 겪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찌어찌 잘 살아온 셈이구나 싶은데, 그동안 여러 일을 거쳐 오면서, 세상을 알자면 꼭 많은 일자리를 겪어 보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거리이든 이 일을 맡은 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고 곰삭이려고 하는지가 크게 돌아볼 대목이고, 어느 일을 하든 제 몸을 모두 내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신문배달로 먹고살 때에는 신문배달만을 생각했고, 책방에서 점원을 맡았을 때에는 책방 점원만을 생각했으며, 출판사에서 일할 때에는 출판사 노릇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동네 도서관만을 생각하는 가운데, 제 글쓰기와 사진찍기와 자전거타기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여름에 태어난 딸아이를 집에서 우리 두 사람이 고이 기르는 길만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하루 1/3을 천기저귀 빨고 널고 개는 데에 쓰고, 나머지 2/3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치우고 애 어르는 데에 쓰고, 나머지 1/3은 잠자고 밥먹고 책읽고 글쓰는 데에 보내는데, 어느 하루도 고단하지 않은 날이 없음에도 그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손이 시려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끙끙 소리를 내지만, 한창 글을 쓰다가 아기를 안고 달래야 해서, 아이구 아이구 아기야 하고 하소연을 하지만, 이 모든 일에는 뜻이 있을 테니 기다리자고, 견디자고, 살아내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어머님 딸아이를 살짝 스치면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머님 딸아이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할까 하고.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든,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살고 있을까 하고. 앞날도 앞날이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무슨 놀이를 즐기고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이웃 어른을 부대끼면서 배우고 익히고 곰삭이고 받아들이고 나누고 펼치고 있을까 하고.